미국의 1980년대 vs 한국의 2010년대

[ 창조과학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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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06일(금) 15:54

오늘날 미국 교회는 잘 알려진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인의 대부분은 70대 이상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초에는 이 노인들이 40대였었다는 말이다.

과연 이 노인들이 40대였을 때 미국 교회는 어떤 분위기였을까?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예로서 1977년 미국 시카고에서 국제 성경 무오성 심의회(ICBI, 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의 창설을 들 수 있다. 이때 이에 참석했던 실행위원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교회와 신학을 이끌었던 거목들이었다. ICBI는 당시 목회자와 신학자와 가운데 성경의 기준과 전통적인 가르침으로부터 염려될 만치 멀어진 당시 상황 때문에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설립 목적은 성경무오성의 믿음이 성경 권위의 본질적 요소며 건강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필수적 조건임을 알리고 힘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과연 1970년대 말에 어떤 분위기였기에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가? 진화론의 등장 이래로 1930년대 자유주의 신학의 범람에 맞서 성경을 근거로 '복음주의'라는 신앙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1970대 후반에 들어서서 젊은 복음주의자들에게 이상한 흐름이 감지되었다.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하지만 성경을 신정통적(성경이 사실이라기 보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해석)으로 접근하며, 자신들의 생각대로 복음주의를 재정의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분위기에 맞서 성경의 무오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바로 ICBI였던 것이다. ICBI는 "이 세대의 쉽게 변할 수 있는 조류에 성경을 꿰어 맞추려는 경향"을 분명히 경고했다. 비슷한 시기인 1970년부터 기독교인 과학자들로부터 창조과학 운동이 불기 시작한 것도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보기 어렵게 된 동기는 수십 억년의 지구나이를 주장하는 진화론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CBI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신(!)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이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지칭하면서 이때부터 복음주의란 단어의 의미마저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화의 순서대로 수십 억년 동안 창조와 진화를 반복하셨다는 '점진적 창조론' 같은 타협이론을 만들어서 성경을 사실이라고 하는 창조과학 사역까지도 와해시키기까지 했다(이 이론의 창시자도 자신이 복음주의자라고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 교회의 결과는 무엇인가? 

Already Gone! (이미 떠나버렸다). 성경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 이상 다음 세대는 교회에 남아있을 이유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떤가? 아직까지 40대가 교회에 남아있어서 다행일까? 미국도 그때는 40대가 교회에 있었다. 최근 한국에 진화론의 모순을 지적하는 창조과학의 도서가 많이 출판되며 다시 한번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 수십 억년 동안 진화의 순서로 창조와 멸종을 반복하시고, 더군다나 멸종시키기 위해 매번 격변을 일으키셨다는 '다중격변론'과 같은 성경에도 없는 타협이론이 나온 것까지도… 많은 면에서 분위기가 30년 전 미국과 유사하다.

과연 한국 교회의 30년 후는 어떨까? 한국도 교회 내면에서는 미국의 30년 전과 비슷한 위기가 왔다. 성경은 무오하다. 이 고백 안에서만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이 있으며 건강한 교회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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