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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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03일(화) 15:08

 "여러분은 현재 목사나 사역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그것을 대신할 사람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여러분의 아내나 자녀들에게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이것은 10여 년 전, 필자가 부목사로서의 사역을 잠시 접고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가정 사역' 과목을 담당했던 캐나다인 교수의 질문과 필자의 대답이었다. 그때까지 목회에만 전념하던 내게는 평범하면서도 잊어서는 안 될 가정의 소중함을 깨우쳐준 시간이었다.

수긍하기 싫지만 현재의 '담임목사' 자리는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목회자가 잘 감당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사역의 자리도 분명히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아니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본인의 역할, 곧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필자의 선친은 10년여 동안 짧고 굵게 목회하시고, 오십대 초반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목회자로서 필자의 선친은 당시 대부분의 한국 목사님들처럼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기 위하여 자신의 가정이나 개인적인 즐거움을 뒷전으로 미뤄야만 했다. 필자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가족여행이나 호사스러운 외식의 기억이 없다. 오직 교회와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며 목회 열정을 불태우셨던 모습만이 선명하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아버지와 아들로서 살갑게 부딪힌 추억이 별로 없음이 내겐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제 필자가 목사 안수를 받은 지 20년이 가까이 되어감에도 여전히 목회가 쉽지 않다. 그런데 더욱 필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다. 지금 군복무중인 큰 아이를 양육할 때는 옳고 그름에 대해서 분명하고 매사에 노력하는 아이가 되도록 힘썼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둘째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데, 첫째 아이보다는 상당히 여유가 생겼다. 내가 애써도 안 되는 것은 주님께 맡기자는 믿음(?)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느 목회 영역보다 어려운 것이 아들과의 관계다.

우리는 목사의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목사의 아들로 자랐던 필자의 친구나 주변에도 소위 문제아가 되어서 아버지의 목회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 사례를 여러 번 보았다. 아버지로서 교회 목회에는 충실했는지 몰라도 가정 목회에는 소홀했던 결과물일 것이다.

올해부터 교회에서 기도하고 준비하던 가정 사역을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삐걱거리며 무너지는 가정들을 그냥 지켜볼 수 없어서 '어머니 학교'와 '신혼부부 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다음에는 '부부 성장 교실'이나 '아버지 학교'도 생각하고 있다. 교회에서 가정사역을 시작하면서 '나'를 돌아본다. 교회를 위해 사역하는 '담임목사'라는 자리를 떠나 한 가정의 남편이요, 아버지요, 또 아들이라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나도 못하는 것을 성도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솔직히 대답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기회를 통해 아내에게 좀 더 자상한 남편, 아들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소위 친구 같은 아빠(?),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에게는 다정다감한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소원을 되뇌어 본다.

"목사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부디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목회를 감당하시는 선후배 목사님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이석우 / 목사 ㆍ 성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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