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구호' 뜬다

[ 선교 ]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현장에서 영향력 입증, 교회 특성 살린 저비용ㆍ고효율 지원으로 각광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1년 04월 28일(목) 10:24

   
▲ 최근 뉴질랜드 재해지역 교회들을 방문해 문화구호를 실시한 창조음악치료센터 상담사들.
지난 2월 22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 강진. 2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하고 이례적으로 많은 교회들이 무너져 내렸다. 복음이 활발히 전해지고 있던 곳이어서 교회 피해도 컷다. 특히 한인교회들은 주재원과 유학생들이 대부분 귀국하면서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3월 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지속되는 여진의 공포도 컸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
 
"지구 저편에 버려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위로해주던 사람들마저 하나 둘 떠나가니 감당하기 힘든 무력감과 패배감이 밀려오더군요." 현지 박충성선교사의 말이다.
 
본보 보도를 통해 현지 한인교회들의 어려움이 알려지면서 본교단과 후원교회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현지 한인교회들은 연합재난본부를 마련하고 모인 후원금으로 구호품, 쌀, 상품권 등을 공급했다. 또한 복구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 동참해 현지 사회에 재난 극복의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국교회 구호 역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이름하여 '문화구호'의 출발이다. 문화구호는 재해지역에서 공연 등 문화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트라우마(trauma)를 치료하고 희망을 선사하는 것으로, 굳이 '구호'라는 명칭을 붙인 것은 외부적인 지원 또는 자발적 봉사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총회 사회봉사부(부장:김점동, 총무:이승열)의 연결로 지난 3월 30~31일에는 화곡동교회 김의식목사가 현지를 찾았다. 상담치유집회와 함께 하루에 15명 씩 개인적인 상담이 이뤄졌다.
 
현지 선교사들은 "이민사회의 특성상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고 말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석자 전원이 깊은 공감을 통해 가슴 속에 쌓여 있던 울분을 쏟아냈죠. 이번 집회를 통해 교인들이 다시 말씀을 강하게 의지하며 무릎꿇고 기도할 힘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이어 본격적인 문화구호가 시작됐다. 다섯 차례의 음악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창조음악치료센터(원장:백경실) 상담사들은 먼저 북 등 타악기들을 동원해 내면의 아픔과 스트레스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자연재해로 이렇게 됐는데 사람을 탓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하나님을 욕할 수도 없구요. 정말 화낼 기력조차 없었는데 내 앞에 있는 북을 힘껏 두드리는 동안 힘이 생기고 마음 속 응어리가 서서히 풀리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죠. 혼돈 가운데 언제부턴가 옆 사람의 리듬이 들리고 박자를 맞추게 되더군요.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멋진 연주가 이뤄졌고 사람들은 쑥스러워하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춤을 춥니다. 근심을 벗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따뜻함을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아들이 웃더군요. 죽음, 파산, 붕괴, 폐허, 이별, 절망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친구, 웃음, 사랑 등 아름다운 말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한편, 지난 3일에는 '극단 향기' 단원 11명이 자비량으로 현지를 방문해 뮤지컬과 찬양으로 현지 교인들의 닫힌 마음을 열었다.
 
"트라우마 증상이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사람들이 가기 싫어합니다. 그동안 교인들이 하나되지 않아 연합 집회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뮤지컬과 찬양 공연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교회들이 앞다퉈 자기 교회에 찬양팀이 서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찬양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바꿔어 놓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방문단이 돌아간 후 지역 9개 교회가 모여 3시간 동안 집회를 여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현재 시내는 1년, 주변 지역의 잔해를 치우는 데는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한인들은 그 1년이 참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 1년 동안 한국교회가 이 지역을 잊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지역 신문 더 프레스(The Press)는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교회는 무너졌지만 광장과 이웃 예배당 등에서 기독교인들의 나눔과 섬김이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지 선교사들은 "이번 재해를 하나님의 심판이 아닌 축복으로 바꾸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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