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교회'와 '원로목사'

[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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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27일(수) 16:10

 
다들 세습교회는 '안된다' '나쁘다'고들 하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나의 생각이라고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들의 생각도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세습이란 왕조시대의 유물이여서 오늘의 민주사회에서는 이미 폐기처분된 제도이다. 그러나 구약에도 제사장들의 세습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교회사에도 전에 세습하는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세습한 교회에 대해서 선별적 판단을 거부하고 무조건 한통으로 몰아넣고 비난한다. 필자도 전에는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큰 교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 싫어서 자기 아들에게 넘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더 거북스러운 말을 하자면 자신이 누리던 영화(?)를 자식에게 양도한다는 얄팍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안한 생각이다. 교회를 생각해서 한 삼고초려인 것을 간과한 탓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세습교회의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모습을 보고 있다. 무슨 생경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고 묻는 이에게는 대답 대신 강남에 이웃하고 있는 두 큰 교회를 가 보라고 하고 싶다. 한 교회는 치고 받고 소리친다는데 또 한 교회는 평화롭고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다.
 
필자는 그 세습된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종종 듣는다. 그 교회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가 하나다. 서로 돕고 신뢰하니 교회도 하나가 된다. 그러니 세습시킨 목사님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내고 싶다. 물려줄만한 인물로 아들을 키운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자식에게 영화를 양도한 것이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을 일구어 놓은 교회를 두조각 세조각을 내서는 안되겠다는 고육지책이 거기에 담겨있었던 것이다. 최선은 아니였을지 몰라도 거기에는 분명히 차선이 있었다. 세습도 세습 나름이리라. 처음에는 최선을 선택하지 않고 차선을 선택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선이 되었고 최선이라고 선택했던 교회들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에도 이르지 못하여 자기 교회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한국교회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다 세습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세습보다 그 무서운 세습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은퇴를 하고서도 그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연습(沿襲)말이다. 이것이 세습(世襲)보다 더 큰 해를 불러오고 있다. 평소에 존경해왔던 우리 노회 아니 이 지방 은퇴목사님들은 대부분 확실한 은퇴를 하셨다. 역시 평소에 존경했던 대로였다. 은퇴 후에는 그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그 교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유치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목사님은 은퇴를 두어 달 앞두고 교인들에게 "나는 은퇴 후에는 누구의 장례식 집례도, 누구의 결혼식 주례도 않을 것이니 꼭 장례식 집례를 나에게 받고 싶은 분은 두 달 안에 돌아가시면 됩니다"라고 했단다. 얼마나 단호한 은퇴 선언인가! 어찌 정든 그들의 그것을 해주고 싶지 않겠는가만은 후임을 위한 배려로 감정을 억제한 것이다.
 
모든 빛은 후임에게로 가게 해야 한다. 태양은 하나여야 한다. 교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을 슬퍼해서는 안된다. 조선조 명종 때 상진대감은 은퇴한 후에는 멸재(滅財), 멸채(滅債), 멸정(滅情), 멸원(滅怨), 멸망(滅亡)의 '사계오멸(死計五滅)'을 세우고 살았다고 한다. 정(情)도 뗄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독립한다. 잊혀지지 않으려고 교회 곁에서 치근거리지 말고 잊혀지도록 멀리 떨어져 주어야 한다. 그러면 오히려 기억에 더 남을 수도 있다.
 
진짜 무섭고 해되는 세습은 은퇴를 하고도 옛 자리를 못떠나고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내가 훌륭한 목회자였던가, 그렇지 못했던 목회자였던가를 알아보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가 지금 서있는 자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박병윤
목사ㆍ광주 충광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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