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큽니까?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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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27일(수) 13:46

어느 날 제자들이 물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였다. 제자들의 질문 안에는 천국도 세상왕국처럼 높낮이가 있고, 크고 작음이 있고, 귀천이 있다는 오해가 스며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이라고 화두를 꺼내긴 했지만 사실상 그들의 관심은 머잖아 이뤄질 메시아 지상왕국에서 누가 주체가 되느냐 였다. 그들 역시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권력 지향적이었고 권세몰이의 무리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지상에 메시아 왕국이 건설되고 중요권좌에 누가 오를 것인가로 노심초사했던 제자들의 언동은 어떠했으며 얼굴표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그 그림이 선명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시샘하고 다투던 그 자리는 실상 허공일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자리는 없는 자리였다. 이즈음에서 우리네 자화상이 오버랩 된다. 우리 역시 천국에도 없는 세상자리 때문에 시기와 질투 모략과 중상으로 인격과 삶을 도배질하는가하면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무엇인가를 움켜쥐려한다.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거리일 뿐이다.

주님의 대답으로 돌아가보자.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돌이킨다는 것은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고와 행동의 방향을 바꾸는 것. 즉 회개를 의미한다.

우리시대는 돌진만 있을 뿐 돌이킴이 없다. 전후좌우 안 가리고 돌진하다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람들, 죽기 살기로 달리다 넘어지는 사람들,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돌이키라"고. 잘못인줄 알면 그만두는 것이 사는 길이다. 잘못 잡힌 방향이면 돌이키는 것이 흥하는 길이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라"는 말씀도 깊이 살펴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되라는 말과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은 의미가 다르다. 어린아이들은 때와 장소, 상황과 여건을 가리지 않는다. 무모하고 철없고 그런가하면 천진스럽고 저돌적이다.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라고 했느냐에 대해 칼뱅은 "어린아이의 단순성 때문"이라고 했고, 클락은 "가르치기 쉬운 단순성 때문"이라고 했고, 벵겔은 "신뢰성 때문"이라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매를 겁낸다. 그리고 잘못을 쉽게 뉘우치고 돌이킨다. 완고하거나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고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색깔, 저 색깔로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위 어른들의 세계는 다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가 하면 규범과 표준도 바꾸고 자신의 의지와 결정에 절대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다 라며 큰 기침을 반복한다. 그들의 세계엔 후회는 있지만 돌이킴이 없다.

흔히 허리를 굽신거리고 말소리를 낮추고 상대의 기분을 맞추려는 일련의 행위를 겸손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은 표현이 아니라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들과 같이 되심"이 겸손의 원형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보다는 주님면전에서 내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묻고 결단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루이스비 스미스는 용서가 아닌 것들을 망각, 변명, 다툼의 완화, 받아들이는 것, 관대함 등이라고 했다.

자신이 용서받기를 원하지만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의 사람들, 그러면서 교회를 드나들고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고 직분을 맡은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요즈음 어른들은 "누가 큽니까?"라고 묻지도 않는다. 자신이 크다고 호칭하고 내가 큰 자라고 호통친다. 그리고 좀처럼 깨어지지 않는 가면을 쓴 채 군림하러든다. 그러나 크신 주님, 높으신 주님,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은 사람이 되셨고 땅에 오셨고 종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우린 십자가 앞에서 이렇게 고백해야한다. "저는 큰 자가 아닙니다, 어른이 아닙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작은 자입니다, 종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네 입과 입에서, 이 교회 저 교회에서 합창이 되고, 천둥소리가 되어 메아리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원로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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