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노이아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첫번째 이야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4월 25일(월) 16:58

오늘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종교가 없는 지역은 없는 듯하다. 비록 그 종교의 종류와 내용은 다르지만, 종교 없이 사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없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무교(無敎)라 부르기도 하는데, 종교철학적인 관점에서, 더 나아가 종교를 하나의 커다란 신념 체계로 본다면 무교도 하나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종교가 없는 사람은 신이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믿는 셈이다.

필자가 오랜 동안 철학과 선교학을 강의하면서, 혹은 목회의 현장에 있으면서 가장 안타깝게 느꼈던 부분 중의 하나는 편협하고 건강하지 못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삐뚤어진 유신론의 피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는 말씀이셨다. 주지하듯 '회개(悔改)'라고 번역된 말의 희랍어 원문은 '메타노이아'이다. 한스 킹이 말한 것처럼 메타노이아란 '인간의 사고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변화를 받는 것', '모든 형태의 이기주의에서 하나님과 이웃으로 향하는 것', 이것으로서 '변화된 의식', '변화된 사고방식', '변화된 가치체계'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 결과 기존에 상존(常存)했던 나의 눈이 달라지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참된 신앙생활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온전히 녹여내는 일이다. 욕망, 욕심, 이기심으로 가득 찬 자아(ego)를 과감하게 장사지내고, 새로운 나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아집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의 본령(本領)을 망각한 채, 하나님께 그저 빌기만 하면 복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진다고 기대하는 기복적ㆍ주술적 신관이 너무나 만연하다. 궁하고 아쉬울 때만 찾게 되는 하나님, 한술 더 떠 온갖 이기적인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신앙의 형태가 당연시되고 있다.

이런 신관의 소유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그 뜻에 순종하려는 생각 대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 아첨하여 그 힘으로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루어보려는 자기중심적 사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침내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상업적 관계를 맺어버리곤 한다. 몇 번의 찬양, 어느 정도의 헌금이나 재물 등으로 하나님께 아부하여 그 몇 배로 잇속을 채우려는 천박한 장사꾼의 심보와 다를 것이 없는 신앙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나는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올곧은 신앙인으로 거듭 날수 있도록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바울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 하였다. 어린아이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바로 유치하고, 낡고, 치졸하며, 저속한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도 매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지? 혹여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주님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보고자 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적인 자기 성찰의 계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는 아닌지? 점검해보고 살펴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래서 예수님 본연의 모습을 가리고 있는 무지(無知) 아집(我執) 편견(偏見)과 독선(獨善)이라는 먼지와 때를 말끔히 씻어내어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이 땅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펼칠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소망한다.

황순환총장/대전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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