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壁) 사랑?

[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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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21일(목) 13:46

 
우리나라 개신교가 사회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석신자의 숫자도 정체 내지 감소하는 가운데, 교회당 건축만은 중대형교회들의 뚜렷한 추세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작년인가, 서울 강남의 모 교회의 교회당 건축 계획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와 사회가 한번 크게 떠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소위 중대형교회들의 교회당 건축에 대한 관심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된 것 같다. 이러니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교회임에도 건축을 하지 않으면 왠지 뒤처지는 느낌이 들만도 할 것이다.
 
개교회가 재정이 되고, 늘어나는 교인들을 다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차후의 전도 차원에서 교회당을 신축하거나 확장하는 일은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다. 예배, 교육, 친교, 봉사 등 교회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교회당을 근사하게 갖추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비좁고 불편한 시설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육을 하는 것은 전도의 차원에서도 비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건축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당을 신개축하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만은 버려야 한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칼빈 선생이 1536년에 썼다고 하는 <기독교강요> 제1판 서문으로 프랑스 왕 프란시스 I세에게 보내는 글이 있다. 거기서 칼빈은 니케아 회의 시대의 힐라리(Hilary of Poitiers)가 한 하나의 경고문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를 경계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은 어리석게도 벽(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교회를 집과 건물로 알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과 건물 안에서 평안이라는 이름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들 안에 마침내 적그리스도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의심이라도 있습니까? 이것들 보다 오히려 산, 삼림, 감옥, 호수, 그리고 깊은 구릉이 더 안전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이런 곳에 추방되어 살면서도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힐라리의 시대에도 유력한 교회지도자들은 교회당 건축을 좋아하였던 것 같다. 힐라리는 그들을 '어리석게도 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힐라리가 오늘 한국교회를 본다면, 어리석게도 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벽을 사랑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거기에는 마침내 적그리스도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교회당을 건축하는 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겠지만, 결과는 적그리스도가 자리를 잡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려면 웅장한 교회당이 아니라 차라리 들판이 더 낫다고 한 것이다. 그곳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자리를 틀고 앉을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당 건축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비판받을 일일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필요하면, 그리고 주님께서 정말 원하시면, 벽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힐라리가 경고한 것처럼, 크고 웅장한 교회당에 자리를 틀고 앉게 될 적그리스도를 의식하고 세워야 한다. 그리고 웅장한 교회당을 갖춘 교회지도자들은, 교회당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교회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을지 모르는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면 때려잡고 쫓아낼 수 있을지를 기도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최태영
교수ㆍ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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