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30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4월 20일(수) 15:46

월-歲의 고통
본문: 창 47:7-10
찬송가: 91장(구 91장)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내 나그네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 야곱은 태어난 것은 물론 결혼도 자신의 원대로 된 것이 없다. 장자권을 형에게 샀음에도 아버지의 모든 소유가 형 에서에게 넘어갔다. 자식도 맘대로 되지 않아 자식이 자신을 속이는 일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 야곱을 더 힘들게 했던 고통이 있다. 아들들이 요셉을 팔았음을 후에 알게 되어서도 아들들을 나무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에게 팥죽을 팔아서 장자권을 샀기 때문이다.

또한 얍복강가에서 자신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음에도 야곱으로 살아가고 있는 고통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진실되게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도 없다. 이것이 자신이 험악한 인생을 살았노라 말한 이유이다.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바로를 만나러 들어갈 때 야곱은 바로를 축복하고 나올때에도 축복하면서 나온다. 이러한 축복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베델에서 약속하셨듯 함께 하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그네의 세월이 고통이 아니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축복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면 떠날 수 있는 나그네의 삶이 축복인 인생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바로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야곱은 떠돌이, 방랑자, 나그네, 험악한 인생을 살았으나 그의 인생 여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으로 축복의 인생, 축복하는 인생이 되었다. 야곱이 아들들에게 마지막 축복의 유언을 할 때 이스라엘로 다시 불리워지게 된다. 야곱은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험악한 세월 속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랑이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나그네의 인생을 누리며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동일 목사
안락교회 시무


화-부활의 증거
본문: 행 5:12-42
찬송가: 154장(구 139장)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동시에 자신도 장차 예수님 안에서 부활할 것을 믿는 부활신앙이다. 부활은 기독교신앙의 핵심이며 생명이다.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으면 바른 믿음이고 생명력과 능력을 가진다.
 
반면에 부활을 사실로 믿지 않고 실존적으로 믿는 믿음은 그 안에 생명도 능력도 없다.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 증거한 것 때문에 붙들려가서 채찍질을 당하고 풀려나면서 자신들이 마침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자가 된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사도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음을 증명한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는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숨어 지냈다(요20;19). 그런데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하신 성령께서 그들에게 확실한 부활신앙을 주셨고 그 때부터  제자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끝내 십자가의 죽음을 당했다.
 
초대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면서도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면서 부활을 증거 한 것은 그만큼 부활에 대해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것은 십자가가 부활의 증거임을 의미한다. 부활을 믿기에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부활의 조건이며 증거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잘 지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된다. 세상을 구원하는 이시대의 의인이 된다.

오늘의 기도

부활의 주님! 저희에게 부활신앙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자기 십자가를 잘 짐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국현 목사
한일교회 시무


수-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
본문: 눅 9:22-25
찬송가: 151장(구 138장)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목에 걸고 다니는 악세사리가 아니라 등에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부인이 "목사님, 저도 한 번씩은 십자가를 질 때가 있습니다. 목에 걸고 다니던 십자가가 어쩌다가 한번씩 뒤로 넘어가면 지고 가는 거잖아요?" 현대 크리스찬의 모습을 풍자하는 예화이다.
 
십자가는 죄인이 죽어야 할 사형틀이었다. 십자가의 무게는 무려 400파운드(180kg)나 되며 죄인은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정신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자기를 죽이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활의 기쁨이 온다는 것이다. 자기를 죽일 때 참된 자아가 살게 된다. 자기를 비울 때 채워지고, 낮아질 때 높아지고, 죽을 때 사는 것이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최고의 상징물은 십자가이다. 십자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이다. 비록 작은 십자가일지라도 우리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가 십자가 없이는 영광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날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철훈 목사
흰돌교회 시무


목-주인의 뜻을 아는 지혜
본문: 마 20:1-16
찬송가: 197장(구 178장)

한 신사가 노숙자에게 지갑을 꺼내서 천원을 주었다. 그때 노숙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는 늘 만원씩 주시고, 작년에는 오천 원으로 줄었고, 올해엔 천원으로 더 줄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신사가 대답하길 "재작년에는 내가 총각이었으니 여유가 있었고, 작년에는 결혼을 해서 아내가 생겼고, 올해는 아이까지 생겼지." 그러자 노숙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했단 말입니까?"
 
우리는 가끔 자신의 소유가 아님에도 계속해서 은혜를 받았다는 이유로 은혜를 내 것인양 착각하곤 한다. 이것을 은혜가 빚어낸 착각이라고 한다. 오늘의 말씀에는 이렇게 착각한 품꾼들이 등장한다. 분명 포도원 주인이 아니면 굶주릴 뻔 했음에도 한 데나리온 씩 받았다고 불평을 한다. 아무도 쓰지 않는 쓸모없는 일꾼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은혜를 베풀었건만 이들은 오히려 주인에게 늦게 온 품꾼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원망한다. 은혜란, 다른 사람과 비교해 주인을 향해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주인이 베푸는 의지와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는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만이 은혜를 은혜로 받을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라고 말한다.  은혜란,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모두 주인의 뜻을 알자.

오늘의 기도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신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베푸시는 말씀과 깊은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종범 목사
안강제일교회 시무

금-하나님의 백성이 지켜 행할 삶
본문: 신 12:1-7
찬송가: 357장(구 397장)

가나안에서는 광야에서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은 그래서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평생'이란 세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까지 이른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땅에서의 삶은 곧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우리가 변화하여 맞이하는 세상에서 지켜 행할 삶이다. 
 
먼저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영적청결이다. 가나안 구석구석 단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가장 먼저 행한 일이다. 특히 영적인 범죄와 배도에 대해 민감할 만큼 우려 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마땅히 행해져야 할 법도이다.
 
다음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이르게 된 궁극적인 목적을 성경은 여호와를 섬겨 제사, 곧 예배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제사와 제물도 각자의 소견대로 드려져서는 안되며 하나님이 주신 규례에 따라 드려져야 한다. 이것은 우상숭배와 예배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우상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반면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요구된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임재하신다. 그리고 끝으로 여호와 앞에서 먹고 그분이 복 주심으로 우리는 즐거워하는 것이다. 소요리문답에서 "사람이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목적임과 동시에 거듭난 자가 누릴 삶의 축복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다름아닌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의 잔을 마시는 그곳임을 믿습니다. 그곳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권 목사
영도교회 시무


토-그리스도의 세례로 하나 되라
본문: 롬 6:3-11
찬송가: 284장(구 206장)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할례를 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할례 이전에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인친 것이 할례이다. 믿음을 좇는 우리 복음 시대 새 언약의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 두 언약의 공통점은 피 흘림의 언약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롬 6:4-5)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옛 사람이 장사되고 새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한 생명체가 되는 길은 세례를 통해서 되는 은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길이 세례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도 세례를 받아 옛 사람을 장사 치르게 된 사람에게 보장된 은혜이다. 아브라함과의 옛 언약에도 할례를 받지 않는 자들은 끊어졌다. 새 언약도 그러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지 않는 자들은 부활의 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끊어진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다.(갈3:27)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장사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새 생명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바다와 구름 아래 세례 받은 것이다. 애굽 사람은 죽고 새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물에서 구원 받은 것이 세례이다. 노아 방주에서 물로 구원 받은 것 역시 세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세례를 받고 하나가 되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과 저주를 장사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 자랑하며 증언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연섭 목사
한사랑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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