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공생공빈의 길을 살자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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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13일(수) 13:57

인류의 역사를 기아(飢餓)의 역사로, 21세기를 기아의 시대로 보는 시각이 있다.

우리는 오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는 시대, 그러나 가장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고통 받고 있는 부정의와 모순의 시대, 이른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인류의 현재와 미래는 자연과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집단적 희생의 대가로 치르면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사회진화론적 정글의 법칙 아래 설계되고 있다.

지구생명공동체가 스스로를 지탱해 온 상호의존성의 원리와 생명체를 위해 수난 당하는 모성적 사랑의 감수성 등 영성을 내재한 생명유전자코드는 지워져 가고 있다.

오늘 욕망이라는 이름의 쾌속열차를 타고 질주하는 전 지구적 소비사회는, 크리 인디언의 예언처럼, 지상의 마지막 나무가 잘려 나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혀 나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된 후에야 비로소 돈과 권력과 명예를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생태계의 마지막 겨울에 직면하고서야 우리들의 생명의 정원에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와 인간의 인간에 대한 태도는 상호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인간의 사회생태적 관계사를 형성해 왔다.

인간의 자연정복과 개발을 하나님의 창조명령의 일부로 정당화해 온 서구의 근 현대 기독교세계관과 신학과 선교는 자연에 대한 지배뿐만 아니라, 여성과 유색인종들과 비서구 문명세계들을 '자연'의 영역에 속하는 '야만'으로 간주해 왔다. 그리고 그들을 기독교화하고 서구문명화 하는 것을 서구백인사회의 역사적 사명으로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와 모든 대상화 작업을 정당화해 왔다.

그 결과, 콜럼버스가 인디언들의 대륙에서 '발견된' 이후 지난 오백 여 년의 세월은 서구식민주의의 팽창과 반 생명적 과학기술의 진보와 침략전쟁과 개발에 의해 지구생명공동체의 가계의 근간이 뒤흔들린 집단적 생태살해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역사의 끝자락에서 자연자원의 고갈과 기후변화와 기근과 지진과 해일과 전쟁과 핵 위험 위에 가축 집단 살 처분과 강들의 수난까지를 더 하면서 생명세상이 토해내는 죽음의 곡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계시록의 묵시적 환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만 보고 있다.

이 생명위기의 시대에 일본의 생태적 지성 쓰찌다 다카시 선생은 '공생공빈'(共生共貧)을 21세기를 사는 인류의 길로 제안한다. 공빈하지 않고 공생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자연을 통해 터득한 진리이다. 공빈이란 자기 비움, 즉 나의 기득권과 이기적 욕심을 버리는 일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유일한 소망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우상과 대적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시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시며, 인류의 절망과 부재의 심연인 '빈 무덤'에서부터 수직적, 수평적, 우주적 차원을 총합한 전 생명세상의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새롭게 시작하신 부활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공생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요, 역사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자기 비움의 순교적 순례의 길, 즉 공빈의 길을 살아가신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모든 생명세상의 길, 생태적 진리의 길은 공빈을 통해 공생을 이루는, 즉 자기 비움을 통해 만물의 생명의 풍성함을 이루는 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공생공빈의 길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된 하나님을 믿는다. 그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섬기는 자로 있기를 원하시고,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하고자 지위와 신분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 복종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현존이 발견되어지기를 원하시는 분이요, 하나님의 백성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과 수난 당하는 사랑으로 만인과 하나되는 길, 즉 생명세상의 구원과 해방이라는 공생을 위해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 죽어가는 공빈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신 분이다.

오늘 무엇이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공동체로 만드는가? 우리가 아는 바 그 어떤 기독교적 종교예식이나 고백이나 지위나 신분인가? 아니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길, 그 공생공빈의 길에 참여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공동체는 이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깨어 있으며 그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그 공생공빈의 길을 걷는 순교적 순례공동체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교회여, 공생공빈의 길을 살자.

이홍정목사/한일장신대선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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