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2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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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13일(수) 13:48

월-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하나되라
본문: 골 3:1-17
찬송가: 436장(구 493장)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시다.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는 곳마다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는 생명의 빛이시다. 생명의 빛이 들어가는 영혼은 어둠과 죄가 사라지고 생명과 의로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죄악의 사람이 죽고 새 생명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고 함께 일으킴 받아 영생을 얻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 새 생명을 얻은 자는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찾아야 한다.
 
땅에 속하여 더러운 정욕과 탐심을 따라 행하던 옛사람과 행위를 벗어버려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우리 사람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되는 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가 차별없이 하나로 회복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으로 구원된 은혜를 따라 살아야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된 한 생명체이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됨으로 평강을 누려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 우리가 하나가 되어 평강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한 생명체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평강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평강을 이루는 삶이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연섭 목사
한사랑교회 시무


화-우리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본문: 출 4:17-20
찬송가: 288장(구 204장)

다이아몬드는 희소하기에, 물은 꼭 필요하고 많이 사용하기에 그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희소하지도 많이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인데도 그 가치가 높은 물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나 대스타가 신은 신발이나 드레스 심지어는 작은 액세서리까지도 우리의 것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질 때가 있다. 왜일까?
 
그것은 바로 주인이 누구며,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본문을 보면 특별한 지팡이, 능력을 행하는 지팡이가 나온다. 그러나 이 지팡이는 출애굽기 3장까지는 아주 평범한 목자의 지팡이였다. 마른 막대기로 목동의 손에서는 지팡이요, 아이들의 손에서는 막대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로 불릴 수 있었는가?
 
그 대답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 붙들고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모세는 이 지팡이로 출애굽과 홍해 그리고 광야의 모든 기적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누구의 손에 들려지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변한다. 시인 롱펠로우는 한 장의 종이를 취해 그 위에 시를 적었다.  그랬더니 1달러짜리 종이가 6천 달러의 가치를 지니게 됐다.
 
사업가 록펠러는 작은 종이 위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그랬더니 3달러짜리 종이가 1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수표가 됐다.
 
묻고 싶다. 그럼 우리는 누구의 손에 들려져야 진정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는가? 성경은 말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오늘의 기도

모세의 손에 들려진 마른 막대기를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실 지팡이로, 이스라엘을 인도할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 아무 쓸모없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영광의 자리로 함께 가신 주님.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종범 목사
안강제일교회 시무


수-더욱 힘쓸 것
본문: 신 11:13-25
찬송가: 242장(구 233장)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그 지극한 사랑의 세가지 축복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생업의 복이다. 기후가 뜨겁고 건조할 뿐 아니라 강이라고는 요단강 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땅에 하나님은 이른비와 늦은비를 약속하고 있다.
 
둘째, 장구한 복이다. 세대를 이어 오랜 세월 지속적인 복된 삶을 약속하고 있다.
 
셋째, 부강한 복이다. 어떠한 강력한 세력일지라도 능히 당할 수 없을만한 번영과 부강을 약속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세상이 결코 넘어뜨리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선언인가? 하지만 이러한 복을 허락하시겠다는 약속 앞에 조건절이 단서로 붙어 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13절)"
 
모세는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적 지침까지 주고 있다. 즉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자녀에게 가르치되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가르치라' 그리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여 출입의 때에 기억하라는 명이다.
 
곧 무시로 보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말하고 가르치라는 뜻이다. 순간 우리에게 베푸시는 복은 우리 곁을 떠나고 만다. 때문에 간절히 구하고 집중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복이 아니라 그 손을 펴사 복을 내리도록 하실 우리를 향한 뜻, 곧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이 은혜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인 줄 알기에 주님을 더욱 마음과 목숨 다해 섬기며 순종하는 삶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권 목사
영도교회 시무

목-한쪽 문을 닫으시면 한쪽 문을 여신다
본문: 신 3:23-29
찬송가: 361장(구 480장)

모세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게 하시고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신다. 우리도 기도할 때 긍정의 응답도 받지만, 때로는 부정의 응답도 받는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 육체의 가시를 고쳐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네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거절하셨다. 결국 거절도 응답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거절이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겸손하고,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거절하실 때에는 반드시 다른 대안을 준비하신다. 사도바울의 경우에는 의사 누가를 붙여주셔서 평생 주치의로서 전도여행에 동반자가 되어 바울의 병을 치유하게 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 모세의 경우에는 여호수아를 대안으로 마련하시고 준비시켜 놓으셨다. 28절에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다. 모세의 사명이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광야 40년을 인도하는 것이었다면 여호수아의 사명은 가나안 땅 정복과 땅 분배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합당한 여호수아라고 하는 대안을 미리 준비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한쪽 문을 닫으시면 한쪽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게 하소서. 한쪽 문을 닫으시면 더 좋은 다른 쪽문을 열어주심을 믿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철훈 목사
흰돌교회 시무


금-기다림의 고통
본문: 창 40:21-23
찬송가: 438장(구 495장)

우리의 고통가운데 하나는 기다림의 고통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고통의 시간은 우리 하기에 따라 짧아질 수도 길어질 수도 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이미 보디발의 집에서 10여 년의 노예생활을 하고 난 후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3년을 보낸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빨리 끝나거나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는 고통은 반드시 치루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요셉은 감옥에서의 3년이란 기다림의 시간속에서 배운 것이 있다. 먼저는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복직될 것이라고 해몽을 해주고 자신의 무고함을 바로에게 알려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바람을 저버린다. 인간적인 방법을 쓰거나 사람을 의지하면 기다림의 고통은 길어진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또한 요셉은 기다리는 시간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감옥 속에서 요셉은 관원장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음을 알아본다. 그는 자기가 섬기는 사람의 마음을 살필줄 아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또한 지금보다 더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술 맡은 관원장이 자신을 잊었다하여 낙담하며 허송세월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때 바로가 꿈을 꾸고 이를 해석할 사람을 술 맡은 관원장이 추천하게 된다. 고통 속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다. 이를 통해 더 다듬어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계기가 된다면 축복된 기다림이 된다.

오늘의 기도

기다림으로 인하여 지치지 않고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다듬어지게 하옵소서. 현재의 선물을 누리며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동일 목사
안락교회 시무


토-십자가의 도
본문: 고전 1:18-25
찬송가: 149장(구 147장)

사도 바울은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다. 바울 스스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할 정도로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 나타나는 바울은 거의 완벽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했던 바울도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은 적이 있었다. 아덴에서 선교에 실패한 후 고린도에 갔을 때이다. 지성인들의 도시인 아덴에서의 실패 경험이 거칠고 방탕한 고린도사람들 앞에서 바울을 두려워 떨게 한 것이다. 바울은 기도 중에 아덴에서의 실패 이유와 자신이 약해진 까닭을 찾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은 십자가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는 것인데 바울은 아덴에서 십자가를 잠시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있는 작은 세상 지식으로 하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다시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만을 알고 증거했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은 위대한 선교 역사를 이루었고 그 자신은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역사에 기념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끝까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 요즈음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원인이 무엇인가?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는 세상의 말과 아름다움과 물질과 권력과 명예로 치장하고 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십자가의 도가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킬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를 잊고 세상적인 것들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을 용서하소서.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를 회복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국현 목사
한일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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