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 (Henry Nouwen)의 설교세계 < 下 >

[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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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29일(화) 18:05

헨리 나우웬이 그의 저서와 강연,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게 된 것은, 자신의 복음의 체험을 청중들과 나누며, 그의 체험에 독자와 청중을 초대하여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실패, 부족함, 외로움과 소외감, 두려움, 이웃으로부터 거부당함, 그리고 마음의 상처 등을 통해 그가 체험한 하나님, 그를 항상 붙들어 주시고, 그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하셨고, 그가 죽은 다음에도 영원히 사랑하실 하나님을 이야기하며, 독자와 청중으로 하여금 이러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길잡이의 역활을 잘 행하였기 때문이다. 나우웬은 자신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믿음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성향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즉 설교자는 청중들의 믿음을 든든히 세워주는 체험만을 말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던 것인다.

헨리 나우웬의 메시지를 들은 청중들은 그 동안 여러 설교자들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들어온 획일적이요, 진부한 내용의 메시가 아니고, 본문의 말씀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여 그들의 상황에 적합한 메시지로 전하는 그의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곤했다. 그는 복음서를 이 시대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로 전하는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온몸으로 설교하는 나우웬

메시지의 내용에서도 많은 감동을 주었지만, 열정적인 자세로 말씀을 증거하는 그의 모습은 청중으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곤 했다. 나우웬은 설교단 위에 원고를 올려놓고, 설교단에 몸을 가린 채 메시지를 전하는 전통적인 설교자가 아니었다. 그는 강단위에서 댄스를 하듯이, 아니면 서커스의 단원처럼 움직이며 온몸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온 마음과 영혼으로부터 온 힘을 다하여 설교하였는데, 설교 도중 강단 위에서 움직이며 이리저리 오고 가다가 의자가 그의 길을 가로막으면 의자를 공중으로 던지며 설교한 적도 있었다. 워싱톤 D.C. 에 있는 '구세주의 교회' 수련회에 초빙 받아 설교할 때에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메시지를 전하다가 천장 위에서 돌아가던 선풍기에 손가락이 끼어 다쳤는데, 다행이 청중 가운데 의사가 있어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 계속하여 설교를 한 적도 있었다.

나우웬이 이처럼 댄서(dancer)처럼 온몸으로  설교를  한  것은 몸(body)은 단순히 몸이 아니라 영의 표현이며, 영적인 삶이란  육신을  입은  삶인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미국 남가주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는 전 세계적으로 방영되던 그의 교회 주일 예배에 나우웬을 초청하여 3주에 걸쳐 설교를 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나우웬의 설교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 였다. 그 때 그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은 지금도 그 메시지를 잊지 못해 한다고 한다.

슐러 목사의 목회 전성기 시절, 슐러 목사는 그의 교회에서 열리는 목회자를 위한 설교 세미나에서 헨리 나우웬의 설교 비디오테이프를 모델 설교로 사용하곤 했다. 설교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은 헨리 나우웬이 설교하는 것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보고 들을 때, 나우웬이 어떻게 손을 사용하는지, 그의 눈이 어떻게 반짝 빛나고 있는지, 그가 어떻게 자기의 눈을 청중들의 눈과 연결시키는지, 그가 어떻게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요청 받았다고 한다.

고독감에 괴로워하는 나우웬

그런데 강단에서 힘 있게, 지적으로, 뜨거운 열정과 감동으로, 그리고 카리스마적으로 말씀을 전하던 헨리 나우웬이었지만, 강단에서 내려온 후 보이지 않는 그의 삶에는 약한 모습도 많았다. 어느 곳에 초빙을 받아 '영적인 힘'에 관한 감동있는 메시지를 전한 다음, 집회측에서 실수하여 그와 함께 식사나 차를 나누지 않고 그를 호텔로 모셔다 드리면, 그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시차를 무시하고 세계 각 곳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외로움을 풀려고 하였다. 나우웬은 전화를 하도 많이 하기 때문에 그의 통화료는 항상 아파트 월세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수많은 독자들과 청중에게 내적인 평강에 대하여 감동있게 메시지를 주었지만, 나우웬 자신은 불안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친구 집에 새벽 2시에 달려가 문을 두들겨 잠에서 깨운다음, 친구에게 울면서 곁에 있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지 못하거나, 친구들이 그의 편지에 답장이 느리거나 하면 그는 며칠 동안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였다. 나우웬은 그의 메시지를 전한 대로 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약함으로 인하여 괴로워했었다.

지체장애인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에 살면서 기록한 어느 날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예수를 사랑하지만, 나는 스스로 독립하여 살려고 한다. 예수로부터의 독립이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동료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고 한다. 그들의 존경이 나를 영적으로 더 성장시키지 못할지라도 학문적인 존경을 받으려고 한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나의 저술과 여행계획, 그리고 집회계획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계획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나 개인에게 더 영광을 가져다준다 할지라도 이러한 것들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우웬 자신이 설교한대로 1백%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도 우리처럼 상처받은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우웬이 하버드 신학부 교수직을 사임하고 지체장애인 공동체에서 사역할 때, 공동체 소장인 칼 맥미런(Carl MacMillan)이 어느 날 복음서에 근거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 자신이 살 수 없는데 어떻게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우웬에게 이 본문을 어떻게 설교하면 되겠는가 질문하였다고 한다. 그때 나우웬은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한대로 회심하여 살 수 있을 때까지 설교를 계속해야 합니다" (to keep preaching that I might be converted by my own word)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하여 설교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저서와 메시지에서 항상 주제로 나오는 고독, 유혹, 거절, 소외감, 내적인 평화, 받아들여짐, 우정, 기도 등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설교한대로 회심하여 살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여 자기 자신을 향하여 설교한 설교자였다.

계지영 / 목사 ㆍ 영남신대 설교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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