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가정'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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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23일(수) 16:00

 
지난 달 대통령은 취임 3주년에 즈음하여 남은 임기 2년 동안 '소통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은 그동안 여야, 남북, 정부와 국민, 이들 사이에 소통이 잘 안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소통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마 대화의 부재일 것이다.
 
한 포털 사이트 기사의 내용이다. 대학생들에게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다. 여학생은 44분, 남학생은 39분으로 조사됐다. 평균 42분이다. 대화의 주제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66.8%, '식사 하세요 등의 간단한 인사말'이 12.7%, '뉴스 같은 화젯거리'가 8.3%, '진지한 이야기'가 6.7%였다. 그렇게 볼 때 우리 가정의 현주소는 대화도 많이 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대화의 주제도 깊지 못한 실정이다.
 
그 뿐이 아니다. 기성세대와 요즈음의 신세대는 대화방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기성세대는 과거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일방적인 대화방식으로 훈련 받았다. 주고받는 방식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말씀하시고 자신들은 듣는 일방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혹 반대되는 의견이 있다 할지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는 식의 말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즈음 신세대는 그렇지 않다. 자기주장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실하게 언급한다. 그들은 주고받는 상호간의 대화방식을 원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대화방식을 가진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모이면 대화는 단절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화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불소통의 관계가 되어버린다.    
 
대화의 부재, 불소통의 피해는 고스란히 신세대에게 남는다. 젊은이들은 아무리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산다 할지라도 또래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어른들 즉 기성세대와 대화하는 훈련을 하지 않은 결과 곧 이어지는 사회생활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통하지 않는 벽들을 실감하여 많은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가정들은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 대화가 소통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책을 통해 공동의 주제를 갖고 이야기하면 가능하다. 그동안 우리는 책을 읽어도 늘 개인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읽어야 할 책만 읽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일 년에 몇 번만이라도 책을 함께 읽자는 것이다. 같은 책을 선택하여 아버지도 읽고, 어머니도 읽고, 형제도 읽고, 본인도 읽는 것이다. 그러면 따로 '우리 오늘 저녁 몇 시에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기성세대는 기성세대가 이해한 대로, 신세대는 또 그들이 이해한 대로 이야기 할 것이다. 책의 이야기이기에 다툴 일도, 싸울 일도 없다. 그러나 사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필자의 교회에서는 금년에 상하반기로 일 년에 두 번 이 일을 하기로 해서 시행 중이다. 금년 우리 총회의 주제가 '다음 세대와 함께 가는 교회'이다. 젊은 세대 교육에 힘을 쏟자는 것이다. 재산은 우리가 죽은 후에 자동적으로 물려진다. 그러나 신앙의 유산은 사후에 결코 자동적이지 않다. 오직 우리가 살아 있을 때 함께 한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명심보감에 '책 읽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고, 자식 가르치는 것보다 더 긴요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책 읽어 좋고, 자녀들과 함께 하여 좋다. 이런 것을 두고 '꿩 먹고, 알 먹기'라고 하던가?

정우
목사ㆍ미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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