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너무 기죽이지 말라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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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17일(목) 10:01

 
작금에 들려오는 한국교회에 대한 소리는 좋은 소식보다는 아름답지 못하고 어둡고 답답한 소리만 들려온다. 교회의 목회자 폭행사건, 한기총 선거의 타락 소식, 목사와 장로들의 교회문제의 법정다툼, 심지어는 목회자의 부도덕의 문제가 일반 신문과 방송에까지 보도 되어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교회가 타락했고 자정해야 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소위 교회의 의식 있다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보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미흡한 분석과 자성과 대안 없는 비판의 소리가 오히려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름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를 더 기죽이는 소리가 있다. 확인 안 된 리서치 결과를 가지고 기독교가 타종교보다 부흥이 안 되고 있으며, 신부 스님 목사의 신뢰도를 조사하니 목사가 가장 신뢰도가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고 흥미까지 더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잘못 들으면 기독교는 가장 위기이고 금방 넘어지는 종교인 것 같고 목회자는 다 부도덕하고 천박한 사람들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물론 잘못한 것을 합리화 한다든지, 아니라고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뼈를 깎는 성찰과 회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보이는 한 면 만을 가지고 영적인 통찰 없이 부정적인 평가와 비판만을 일삼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기죽이고 소생과 부흥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 2천년사를 통하여 우리가 배우는 것은 기독교는 너무 세상의 평가와 기준에 영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313년 로마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 기독교가 세상의 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 교회의 양적 부흥에 기여를 했지만 한편으로 중세 교회의 영적인 어둠과 교권의 타락의 시초가 되었다는 해석이 이를 뒷받침 한다. 그리고 선교학자 노만 그럽(Norman Grubb)이 "세상은 언제든지 교회에 대하여 박수치지 않는다"는 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목회자들의 바르지 못한 영적 기초로 영적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목회사역의 목표와 목회자의 영성이 세상의 성공과 세상의 인기에 너무 영합되어 보이는 것과 물량주의에 너무 치중되어 그것이 마치 목회의 성패가 좌우되는 영적 착시 현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늘 세상의 기득권과 메이저그룹(major group)에 들어가야 한다는 착각과 무엇이 잘못되면 세상의 변방인 마이너그룹(minor)으로 떨어진다는 초조감에 붙잡혀 있는데 문제가 있다. 거기서 주님의 말씀으로 자유해야 한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8) 그러므로 교회는 크든 적든 세상이 무엇이라 하던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고 세상의 소망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교회는 인간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믿음이 절실하다.
 
노량진의 어떤 교회에서 10년간이나 가난하고 힘든 수험생들을 위하여 무료로 아침을 제공하는 교인들의 모습에서, 서울역의 노숙자들에게 20년간 무료식탁을 제공한 어느 작은 교회 목사님의 얼굴에서 우리는 주님의 미소를 볼 수 있다. 전철역에서 기타를 치면서 목이 쉬도록 복음송을 부르며 전도하는 대학생을 보며 한국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미래를 바라보자.
 
외과 의사에겐 수술의 기본 원칙이 있다고 한다. 썩은 부분을 도려낼 때는 성한 부분이 그것을 이길 때 가능하다고 한다. 요새 썩은 부분을 도려내자는 소리가 너무 커서 성한 부분까지 죽을까 걱정이다. 우리 고통과 아픔이 있을지라도 새살이 강해질 때까지 어두운 부분도 좀 품고 가자. 그 부분도 주님의 몸이니까 교회를 너무 기죽이 말자. 그래도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다.

민경설
목사ㆍ광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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