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가축 눈에 아른거리는데 '하나님 진노'라니

[ 교계 ] 교계의 헛다리 위로에 두번 우는 구제역 피해농가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03월 02일(수) 10:25
   
▲ 구제역으로 키운 소를 모두 잃고 망연자실 축사를 바라보는 축산업자.

"구제역 피해를 입은 농민들을 위로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지금의 축산 농업 형태를 비난하고 육류 소비를 줄여 채소 및 곡류 위주의 식사를 하자고 말하는 것은 축산농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을 당해보지 않은 분들이 생각 없이 말을 하시는 것 같은데 듣기에 정말 거북합니다. 특히 믿는 사람들은 말씀을 삼가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동에서 지난 12월 초 소 70마리를 살처분한 이건재장로(고천교회)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 도중 감정에 북받쳐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다. 가족처럼 키우던 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최근 주위 사람들에게서, 혹은 교계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들은 '가시 돋힌 언어들' 때문이었다.
 
최근 모임에서 한 목사로부터 "소 키우기 싫으니까 일부러 죽인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 장로는 최근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구제역 관련 행사에서도 피해 당한 농민들을 직접적으로 위로하기 보다는 지나친 육류소비에 대한 반성과 비판, 기업형 농가의 비생명윤리적 사육 환경에 대한 비판 등에만 집중되어 있어 오히려 구제역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울분만 돋구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2월 애지중지 키우던 소들이 구제역 확정 판정을 받고 매몰된 후 며칠을 눈물로 지샜다"는 이 장로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농촌에서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어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진노'라는 식의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며 "최근 몇번이나 그런 자리가 있었는데 정말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며 울분을 쏟아놓았다.

# 위로가 아닌 상처만 주는 교계 행사들

최근 본교단을 포함해 교계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제역 관련 행사에서는 천변일률적으로 지나친 육류소비에 대한 반성과 비판, 기업형 농가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비판에만 집중되어 있어 오히려 구제역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의 정서적 괴리만 넓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본교단 총회가 '구제역 사태에 대한 신학적 입장과 교회 대응을 모색하는 포럼'을 시작한 이후 NCCK, 한국교회희망봉사단 등 여러 기독교 단체에서도 워크숍,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구제역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교회가 위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포럼 및 워크숍에서 대부분의 신학자 및 목회자들이 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가축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 "물질을 한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결과물", "탐욕적인 육식문화가 불러온 과잉축산에 의한 공장식 밀식사육의 일반화가 구제역의 원인",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새로운 밥상문화의 전환과 축산방식의 과감한 개선 필요" 등으로 지금 당장 상처입은 축산업 농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보다는 신학적이고 원론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
 
지난 12월 키우던 돼지 1천2백63마리를 매몰한 본교단 이하교회 김대현장로에게 본보가 최근 교계 세미나에서 나오는 말들에 대한 반응을 묻자 본인의 의견을 밝히기 꺼려하면서도 "피해농가로서는 전혀 위로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장로는 "교회 및 기독교 단체에서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것 보다 그저 조용히 피해농가와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주는 것이 위로가 된다"며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지 축산을 재개해서 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조용히 기도나 해달라"

교인들이 구제역 피해를 입은 안동노회 풍산교회 장세문목사 또한 최근 교계 세미나의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장 목사는 "최근 세미나에서 육식 위주의 소비문화를 지적하고 공장형 농장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생명사랑의 측면에서는 맞는 이야기지만 지금 구제역 피해를 입고 마음을 아파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비판하고 "지금은 교회가 이들의 아픔에 동감하고 성의를 표시하며 위로를 해주는 것이 더 이들의 마음에 와 닿을 것 같다"며 최근 교계 세미나에서 흘러나오는 말들과 피해 농민들과의 괴리감을 비판했다.
 
아직 구제역의 피해를 입지 않은 농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군산시 서수면 관원리에서 돼지 1천8백 마리를 키우고 있는 최희오장로(옥산중앙교회)는 "구제역 피해를 입은 농민들을 위로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지금의 축산 농업 형태를 비난하고 육류 소비를 줄여 채소 및 곡류 위주의 식사를 하자고 말하는 것은 축산농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며 "구제역 피해를 입은 분들은 3~4개월 있으면 다시 축산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위로는 커녕 섭섭함만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국내산 육류의 소비를 증대해서 축산농가를 돕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 같다"며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때를 가려가면서 해야할 것 같다"며 최근 교계 세미나의 방향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