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가설 진화론 회피하려고 나온 결과(6)

[ 창조과학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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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23일(수) 11:41

언제부터인가 기독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록을 포함하여 인간창조, 타락, 저주, 홍수심판, 바벨탑사건 등의 내용을 세속적 문학작품 다루듯이 해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의 첫째 날은 하늘, 둘째 날은 물과 대기, 셋째 날은 땅에 대하여 창조하셨으며, 이어지는 나머지 사흘 동안에는 동일한 순서대로 각각을 채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넷째 날은 하늘을 (별들 창조), 다섯째 날은 물을(물고기 창조), 여섯째 날은 땅을(육지동물) 채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을 사실로 보지 않고 하나의 문학적 구조로 설명하려는 방법을 구조가설이라고 부른다. 얼듯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이런 틀과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첫째 날에 하늘뿐 아니라 땅에 대하여도 말하고 있다. 오히려 땅에 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2절). 셋째 날은 땅뿐 아니라 바다도 창조하셨다. 그러나 위의 예뿐 아니라 다른 문학적 접근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대만큼 자신의 틀에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 교육으로 인해 성경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던 기독교인들 중에 진화론의 진위를 가리기 보다 진화론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창세기에 대한 진위 공방을 피하며 성경을 접근하려는 시도가 바로 '구조가설'이다. 어떻게 보면 구조가설은 자신이 발견한 어떤 패턴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경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성경기록에 대해 '사실'이란 자세에 거부감을 갖는다. 이들은 창세기가 담고 있는 역사는 회피하지만 신학적인 중요성은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하므로, 창세기는 사실보다 그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성경 기자들은 수 없이 창세기의 전반부를 역사적 사실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모세, 여호수아, 역사서 기자들, 시편 기자나 욥, 선지자들 모두는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로 인용했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아담과 하와를 첫 번째 인간으로, 히브리서 기자도 창조완성과 안식을, 11장에 믿음의 선진들을 그대로 기록했다. 베드로도 홍수를, 요한은 가인과 아벨을, 유다는 아담, 가인, 에녹을 그대로 언급하였다.

누구보다 예수님께서는 결혼, 노아의 날, 아벨, 하나님의 창조, 에덴동산 등 기본적인 근거를 창세기 전반부에 두셨다. 이런 부분은 더 나열하려 해도 지면이 부족하다. 실제로 창세기 12장에서 계시록까지 모든 곳에 성경은 창세기 전반부를 근거로 삼고 있으며 기독교 교리의 기초로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학작품을 주셨는가? 6일간의 창조, 아담, 선악과, 홍수, 바벨탑 사건 등은 문학작품인가? 선지자들은 문학작품을 사실처럼 인용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문학작품을 성취하시기 위해 돌아가셨는가? 만약에 창세기 전반부가 문학작품이라면 기독교 교리 역시 동일하게 취급될 수 밖에 없다. 구조가설도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성경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고 성경이 문학작품이 아닌 이상 이런 시도는 의미가 없다.

과연 교회에서 창세기를 구조가설로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구조가설을 선호했었던 유럽과 미국의 텅 빈 예배당이 그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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