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재앙에 울다

[ 교단 ] 본교단 인사들, 횡성 구제역 피해 농가 위로 방문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02월 16일(수) 10:03
   
▲ 빈 축사를 망연자실 바라보는 엄명익장로.

총회 사회봉사부와 군농어촌선교부의 임원 및 실무자들은 지난 11일 구제역 피해농가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강원도 횡성지역의 피해 축산농가를 방문했다. 이들은 한경호목사(횡성영락교회)의 안내로 두 곳의 축사를 방문해 피해상황 및 도움이 필요한 사항들을 확인하고 본교단 총회를 대표해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편집자 주>

【횡성=표현모】 "일단 화부터 났죠. 살처분하고 매몰한 당일에는 마음이 찡한 지 어쩐지도 모르겠더라구요. 2~3일 지나서야 마음이 아프고 이상해지는 것을 느낄 정도였어요. 50마리 정도가 임신 중이었는데 뱃 속의 새끼들이 세상 빛도 못 보고 어미 소를 따라 죽은 것이 제일 마음이 아파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는 엄명익장로(70세ㆍ정금교회)는 지난해 12월 28일 키우던 소 1백29마리를 살처분했다.
 
하루 전날인 27일. 엄 장로는 먹성 좋던 소 중 몇 마리가 사료와 풀에 입도 대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소들에게서 이상한 침이 흐르자 구청에 신고를 했고 검역관이 와서 소의 상태를 확인했다. 결과는 구제역 양성 판정이었다. 검역관이 구제역 확정 판정을 내리자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자식 같이 키우던 소들은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살처분 당하고 매몰됐다. 안락사를 위해 약물 주사를 맞은 소들은 10초도 안되서 픽픽 쓰러졌다. 쓰러진 소들은 포크레인에 의해 덤프 트럭에 실려 축사 바로 앞 마당에 매몰됐다. 축사에 매일 같이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며' 주인이 주는 사료와 풀을 받아 먹던 평화로운 소들은 구제역에 노출되자 24시간여 만에 모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이중에는 생후 두 달도 안된 송아지들도 30마리나 됐다. 이 송아지들은 살처분되는 순간에도 가냘픈 울음을 울며 어미 젖을 빨아댔다고 한다.

# 정부 보상 있어도 재산 피해 불가피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이런 재앙이 없었는데 인간을 내려다보신 하나님이 분노하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22도에서 25도는 되어야 구제역 바이러스가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니까 4~5월은 돼야 이 난리가 끝날 것 같네요."
 
평생 축산업을 해왔던 터라 엄 장로는 구제역의 여파가 지나가면 다시 소를 키울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정부의 보상이 단계별로 진행중이라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대로 보상을 받더라도 예전과 같은 수의 소를 키우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부에서는 3백50㎏ 이하의 소는 3백만원, 3백50㎏~6백㎏은 5백만원을 보상해주지만 국내 최대 경매시장인 횡성 경매장에서 송아지 최저 가격이 얼마전까지 1백8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4백만원을 주고도 사기 힘들 정도로 가격이 오른 상태이기 때문.
 
또한, 설령 소를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소가 성장하는 3~4년간 수입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사료값 등 가축을 키우는 데 드는 제비용을 마련할 방법도 아직까지는 요원하다.

# 기업형 농장의 피해는 더 심각

기업형 축산농장의 경우 피해는 더욱 극심했다. 횡성군 안흥면에 위치한 한 돼지농장에서는 최근 3만7천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 전국 7곳에서 기업형 축산농장을 운영하는 김○○사장은 한 곳을 제외한 6곳에서 구제역 피해를 입어 총 5만 7천여 마리를 땅에 묻었다.
 
키우던 돼지들을 살처분한 마음이 어떠냐고 묻자 대답 대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웃는 그의 눈빛은 오히려 무섭기까지 했다.
 
"한 농장에서 딱 한 마리가 구제역 증상이 있었는데 그 녀석 때문에 4천3백 마리를 묻었습니다. 모든 돼지에게 백신 접종을 해놓은 상태였지만 접종 후 14일이 지나야 구제역이 발생해도 매몰하지 않을 수 있는 법 규정이 있었어요. 우리 돼지들은 그날이 13일째였습니다. 하루 차이로 다 죽은거죠."
 
돼지들을 모두 살처분 한 그날 구제역 관련법이 바뀌어 백신접종후 14일이 되지 않더라도 모두 매몰할 필요가 없게 됐다. 김 사장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바뀌는 구제역 관련 법 때문에 자신과 같이 피해를 입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현재 김 사장은 몇달째 직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하고 있다. "다시 예전 규모의 사육을 위해서는 4년여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그는 "대책없이 커지기만 하는 농가의 시름이 하루 속히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전국민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했다.
 
현재 횡성군 내 돼지는 전멸하다시피 했고, 소는 총 5만 두(頭) 중 5천2백 두가 살처분됐다.(2월 11일 현재)
 
후원 구좌 : 신한은행 140-005-699499(재해구호), 국민은행 008-01-0368-107(예장총회), 우체국 010793-01-000499(예장총회), ☎ 02) 741-4358(사회봉사부ㆍ구호헌금시 필히 확인전화 요망).
   
▲ 매몰 현장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회봉사부, 군농어촌선교부 관계자들.

# 구제역 피해에 시골 인심도 흉흉

구제역은 인심 좋던 시골 농가의 풍경도 삭막하게 바꿔놓았다.
 
구제역이 유행하면서 축산농가들은 본인의 가축도 감염될까 외부인의 출입을 극도로 꺼려하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해부터 축산농가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은 거의 집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없다.
 
가축을 살처분한 후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이들은 이웃에 밤마다 소울음 소리가 들려 결국은 정신 치료를 받는 이가 있으며, 살처분 장면이 반복되어 떠올라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 등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외에도 살처분 후 매몰을 하게 되면 지역 주민간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과 악취 등을 우려한 주민들은 살처분 당사자의 땅 이외에는 매몰할 수 없게 하거나 살처분 당사자의 땅이라 하더라도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면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가축들의 생명이 희생되면서 농촌 특유의 정과 인심도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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