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화가 필요한 '實存'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2월 11일(금) 09:49

모두가 성숙한 인간이 되면 어릴 적에 있었던 추억들이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아쉬움의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있기 마련이네.

그 중에 하나는 어린 시절에 받았던 외할머니의 사랑이라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었네. 남달리 개구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 모두가 나의 나타남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데, 나의 외할머님은 한결같이 나를 반겨주시었네.

그리고 당신께 잡수시라고 드린 떡이나 부침개를 품속에 꼭 간수하고 계시다가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주셨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외할머니께서 주셨던 떡을 먹은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그렇게도 행복해했던 것 같네.

그리고서는 미주알고주알 나의 아는 것을 모두 말하면서 할머니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이었네. 심심하여 외가댁에 들러 방문을 열자 할머니 혼자 계심을 보면서 "다 어디 가셨어요? 아무도 없네요. 안녕히 계세요"하면서 바로 방문을 닫고 나온 적이 있었다네.

나이 많은 외할머니를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내 행동을 보시면서 서운해 하시던 그 분의 얼굴이 지금 내 앞에 떠올라 몹시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네.

사랑하는 나의 젊은 그대들이여! 한창 바쁘게 일터에서 뛰고 있는 그대들을 붙들고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일임을 잘 알고 있네.

요즈음 어른들은 '노인네들이 의레 하는 말'로 취급될 것을 두려워하여 50대에 들어서게 되면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있음을 보고 있네.

그들은 '노인네들끼리'의 사회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아까운 시간을 모두 비생산적으로 보내고 있네. 그대들 역시 조금만 틈새라도 생기면 스마트폰을 들고 입을 다문채 신기한 앱(app)을 다운받아 이것저것 검색하는 즐거움에 젖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되네.

생각해보면 IT시대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에 그 부작용이 많음을 보게 되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대화의 상실일세. 젊은 그대들이 세대가 다른 어른들과의 대화만을 기피한 것이 아니라 그대들 가정을 비롯하여 일터의 식구들 사이에서까지 대화의 상실이 심각함을 보네. 꼭 알아두시게. 대화가 없이는 사람은 공존할 수 없네. 인간이 대화를 상실하게 되면 거기는 곧 비인간화의 세계로 변질되게 되네.

다음과 같은 그림은 어떤가? 남녀노소가 종종 함께 어울려 찻잔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삶의 장을 이야기 하며 필요한 조언을 받기도 하고, 남의 사상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면서 지혜를 주워 담기도 하면서 생기에 찬 삶의 길을 걷는 그림말일세.

자네 주변의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는 그 구조나 형태에 있어서는 그대들의 것과 동일하네. 그러나 그 언어가 함축하고 있는 내용들은 많이 다르다네. 평생을 통하여 담겨진 수많은 사연들이 저장된 언어일세. 자네들이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찾아볼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주제들이 담뿍 담겨있네. 

유명한 철학자 B. 러셀은 '사랑이 있는 긴 대화'에서 "진정한 생활이란 다른 인간과의 어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생활을 의미한다"고 말하였네. 나는 이 밀접한 관계를 우선적으로 자네의 부모와 자식, 그리고 직장의 동료들과 대화를 통하여 맺어나갈 것을 조언하고 싶네.

얼굴과 얼굴을 보면서 나누는 언어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창조주의 선물이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을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기준이네. 오늘도 젊은 자네들이 IT 기기에 정신을 빼앗기고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멀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여나 창조주가 주신 언어의 기능마저 상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네.

뿐만 아니라 IT를 만지지 못한 세대들은 더욱 고독의 세계에 접어들게 될 것을 염려해보네. 거기에 더하여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대화는 우리에게 언어를 주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대화임을 깊이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보태고 싶네. 

모두가 성숙한 인간이 되면 어릴 적에 있었던 추억들이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아쉬움의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있기 마련이네. 그 중에 하나는 어린 시절에 받았던 외할머니의 사랑이라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었네. 남달리 개구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 모두가 나의 나타남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데, 나의 외할머님은 한결같이 나를 반겨주시었네.

그리고 당신께 잡수시라고 드린 떡이나 부침개를 품속에 꼭 간수하고 계시다가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주셨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외할머니께서 주셨던 떡을 먹은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그렇게도 행복해했던 것 같네. 그리고서는 미주알고주알 나의 아는 것을 모두 말하면서 할머니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이었네. 심심하여 외가댁에 들러 방문을 열자 할머니 혼자 계심을 보면서 "다 어디 가셨어요? 아무도 없네요. 안녕히 계세요"하면서 바로 방문을 닫고 나온 적이 있었다네. 나이 많은 외할머니를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내 행동을 보시면서 서운해 하시던 그 분의 얼굴이 지금 내 앞에 떠올라 몹시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네.

사랑하는 나의 젊은 그대들이여! 한창 바쁘게 일터에서 뛰고 있는 그대들을 붙들고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일임을 잘 알고 있네.

요즈음 어른들은 '노인네들이 의레 하는 말'로 취급될 것을 두려워하여 50대에 들어서게 되면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있음을 보고 있네. 그들은 '노인네들끼리'의 사회를 형성하고 거기에저장된 언어일세. 자네들이 아무리 인터중요한 대화는 우리에게 언어를 주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대화임을 깊이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보태고 싶네.

정장복총장/한일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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