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미학

[ 기고 ] 함께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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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25일(화) 18:40

사람은 노년기에 이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죽음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죽음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 온다. 죽음은 인생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명이다. 또한 죽음은 예외 없이 만인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죽음을 맞는 당사자들에게 언제 죽을지 그 시한을 모르는데 신비함이 있다.

자기 죽음의 시간을 미리 알고 그 죽음에 직면했던 자의 고백을 들어보자. 소련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시 급진단체에 가입한 연고로 1849년도 극형에 처해져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었다. 흰 옷을 입고 단두대에 서려는 순간 차르(황제)로부터 사면령이 내려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그 후 시베리아로 유배형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고백하기를 "처형된다는 것은 강도에 의해 살해된다는 것보다 훨씬 두려운 것이다…예정된 죽음…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이란 세상에 없다." '예정된 죽음'. 이 말은 시한의 장단은 있지만 인간 모두에게 운명 지워진 것인데 이 사실 앞에 모두 태연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는 존재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이 죽음 앞에선 인간 실존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매 순간 심각하게 고민하며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죽음에 대해 파스칼은 28세 되던 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한갓 우연이나 자연의 불가피한 운명으로 보지 말자.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보자. 우리가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성스러운 것이 되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이 되며, 우리 믿는 자들의 기쁨이 된다. 이제 아버지는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육체를 악취에 가득 찬 썩은 고기라고 생각하지 말자. 죽음이란 살기를 그친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참으로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영혼이 없어져 무로 돌아갔다고 생각하지 말고 살아서 영원한 생명으로 안겼다고 생각하자."

부활의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할 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깊은 해석이요, 좋은 교훈이 되는 글이다. 바울사도는 주님의 부활을 말하다가 갑자기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은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요, 그 당시 생명을 내놓는 위험한 일인데 죽을 각오로 이를 증언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 죄인으로서의 육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새사람으로 부활한다는 뜻을 말하고 있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 1:23) 깊은 신앙인의 사관(死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외치기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다."(고전 15:55-56)

나에게 닥쳐오는 죽음에 대해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을 직시하고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임박해 오는 죽음으로 인해 공포와 불안으로 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죽음이 다가오니 남은 삶을 거룩하게 간직해야 한다. 죽음이 다가오니 삶을 더욱 엄숙하게 길러가야 한다. 죽음이 왔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는, 노욕을 버리는 일이다.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대한 모든 욕심을 버리고 가졌던 것들도 하나하나 내려놓는 것이 마지막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가끔 우리는 나목(裸木)을 바라본다. 그렇게 싱싱했던 잎사귀들이 누렇게 단풍이 들고 드디어 북풍한설에 낙엽 되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나무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나목을 가만히 보고 감상하면 모두 거추장스러운 잎을 떨쳐버리고 부담 없이 다가오는 봄볕에 피어날 새 싹들이 준비되고 있음을 본다.

둘째로, 남은 시간을 즐겨야 한다. 과거에도 즐거운 시간이 많았겠지만 여생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그동안 경험과 지식을 통해 쌓은 경륜을 가지고 지혜를 발휘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자. 그리하여 행복감을 느끼며 또한 발생하는 문제들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자. 그래서 아름다운 황혼을 만끽하며 슬프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은 여유 있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정행업 / 목사ㆍ대전신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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