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웃음이 손을 잡고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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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25일(화) 18:33

어느 블로그에서 본 글인데, 세대별 반응이 달라 재미나다.
지하철 좌석에 앉으려는데 누가 먼저 앉아버렸다. 20대는 다른 데로 가버린다. 30대는 겸연쩍어하며 서 있는다. 40대는 그 사람이 내릴 때까지 째려보고 있는다.

나이가 들수록 웃음을 잃어버린 세대가 된다. 교회마다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거나 크고 작은 갈등으로 교회에 와서 앉아도 모두들 웃지 못하고 화난 표정들이다. 어느 날 담임으로 부임한 바로 그 교회에서 내가 느낀 것은 모든 교인들이 나를 째려본다는 차가운 느낌이었다. 자기가 앉을 자리에 내가 앉았단 말인가? 아님 내가 내려갈 때까지 계속 째려보겠단 말인가?

웃을 수 없는 사람은 두려움에 붙잡여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상황이 심각하고 무거울수록 우리는 더 여유로운 미소가 필요하다. 마음과 가슴을 열고 삶을 새롭게 바라보라. 과거에 끔찍하게 여겨졌던 일들도 다시 돌아보면 웃음을 안겨다 줄 일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금의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몇 주, 혹은 몇 년 후면 우리는 그것을 웃어넘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꼭 기다렸다가 웃어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그 심각한 문제를 내 마음속 '개콘'으로 불러낸다면 우리 삶은 순식간에 바꾸어질 것이다.

만 9년 가까이 담임목회하면서 4번이나 장로장립을 비롯한 항존직 임직을 하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항존직들의 얼굴에 미소가, 웃음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미워하는 성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기적이다. 용서와 웃음은 언제나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친구이다. 그 중 하나를 발견하면 하나는 반드시 따라오게 되는 법이다.

지나고 나니 그분들이 천사였다. 처음 만났을 그 때 그분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목사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나, 나는 물론 그 분도 이젠 자신이나 남에 대해 마음껏 웃을 수 있다. 목사는 웃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된다. 항상 기뻐하도록 복음을 행동화시켜 주어야한다. 이유가 없다. "뭐가 그렇게 웃기니?"라는 질문엔 "그냥 웃고 싶었어요"라는 대답이 정답이다.

설교를 오래하고 많이 하다 보니, 때론 1시간 설교하는 것보다 그냥 웃을 수 있는 웃음이 더 훌륭한 설
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그래서 때로는 교인들을 억지로 웃게 만들고 설교는 짧게 한다.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목사 설교하고 계시네'라는 말보다 '웃게 만드는 목사'라는 말을 듣고 싶다. 사실 웃을 때 우리 몸은 즉각적으로 그리고 크게 반응한다.

얼마 전 한 대형 교회에서 설교한 적이 있다. 어떤 선배목사님은 그 교회에서 설교 한 번 하면 목사로 죽어도 여한이 없단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은혜가 되는 것은 예배 속에 웃음과 기쁨의 반응이 즉시 나타나는 것이다. 조금만 웃겨도 그냥 웃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한다.

이제 나도 조금은 웃게 만드는 목사가 되어간다. 모든 복음 전도자들은 웃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복음의 핵심이 기쁨이고 기쁨의 표현이 웃음이다. 내 복음의 현장이 웃음으로 가득찬 그날까지 그 말이 현실이 되도록 모든 교회여, 크게 한번 웃어보자.

권위영 / 목사ㆍ 서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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