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극복하는 법

[ 기고 ] 함께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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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20일(목) 10:09

 

삶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경험하고 체험되고 느끼는 인간의 실존을 의미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삶에 불안을 가진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중간적인 존재이기에 삶에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 극복은 신앙의 결단을 통해서 존재의 용기를 얻게 되는 데에 있다.
 
필자는 50여년 전 위장병으로 병상에 있을 때 의학의 힘을 빌었지만 점점 더 병은 악화됐다. 죽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는 고통 속에서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염세주의자들의 철학적인 수필과 사상 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분의 글을 읽는 가운데 인생은 고독이라는 강을 건너는 단독자인 것을 발견하기도 했고 외로이 서있는 노송나무의 한 마리의 새 같은 존재인 것을 느끼기도 했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행복이요 자살하는 것이 둘째 행복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유년 시절부터 믿음의 생활을 했기에 이것도 저것도 선택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게 됐다.
 
그러던 중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몇 권의 책과 성경책을 가지고 청송 약수터로 가서 요양했고 그곳에서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됐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서있었던 나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공부해서 역사의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에게 왜 이와 같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주십니까"라는 것이었다.
 
나는 "병든 자에게는 죽음이 기쁨의 길이기에 주님 속히 저에게 죽음의 잠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나는 성경 욥기를 읽는 가운데 욥이 동방에서 고통스러운 비극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은 위대한 신앙을 발견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기도와 제목은 변화되어 손을 아픈 상처에 얹고 "주여, 주님께서 건강을 주시면 이 생명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겠습니다. 아픔을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오, 건강을 주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겠습니다(욥 1:21)"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3주간 기도하는 가운데 건강의 축복을 받게 됐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장로회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시인이 고백하기를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례를 배웠다"고 고백한 것 같이 나도 눈물젖은 빵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됐고 이 고난의 학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쓰임받는 도구가 됐다.(딤후 2:20∼21)
 
우리들은 삶의 현장에서 고난의 삶이 주어질 때 시인 괴테가 '삶이란' 시에서 고백한 것 같이 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말아야 한다. 운명의 폭풍을 꾸준히 견디면서 나침반처럼 의무에만 살고 투쟁의 모든 날이 지난 후에 역사 위에 찬란한 면류관이 빛나리. 필자는 이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라는 병을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은혜를 깨닫고 종교적 실존자로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오늘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

손승원
목사ㆍ모스크바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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