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잊지 말자

[ 생명의양식(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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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18일(화) 15:42

▶본문 :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이야기를 적은 은혜의 책이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간증하는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이 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바울 사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그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바울은 바울이 됐고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사는 간증에 대한 기록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로 살면서 갖은 고난을 다 당하는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아 자유하는 몸이 된다. 비록 광야의 생활이었지만 그들은 자유인이었다. 하나님이 돌봐주시는 가운데 마음대로 자유를 누리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고 있다. 그 순례의 길이 멀고 험해도 그들은 피곤치 않고 곤고치 않고 힘차게 전진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은혜를 알 때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때는 큰 고난과 시련에 봉착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때 기뻐하신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로마 시대에 안드로 크루스(Andro clus)라는 노예가 있었다. 로마시대의 종은 한갓 주인의 재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주인에게 크나큰 실수를 범했고 하고 죽도록 얻어 맞았다. 로마시대는 노예가 잘못을 저지르면 노예를 주인의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 주인은 안드로 크루스를 죽이려고 했다. 크루스는 앉아서 개죽음을 당할 수가 없어서 그날 밤 어둠을 틈타 도망을 쳤고 사람들에게 잡힐까봐 무조건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산속에서 으르렁 거리는 사자를 만나게 된다. 사자는 입을 벌리며 으르렁 거리기는 했지만 공격할 자세는 아니었다. 입을 벌리고 크게 소리 지르며 울며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다. 크루스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그 사자의 입에 커다랗게 굽은 가시가 걸려있는 것을 알고 용기를 내어 사자에게 다가가 입에 걸린 커다란 가시를 뽑아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크루스는 사자와 친해져서 타잔처럼 자유를 누리며 산에서 살았다. 노예로 사는 것보다 산에서 동물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하게도 산속으로 정찰을 나온 로마 병사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로마시대에는 도망친 노예들은 보통 원형극장에서 굶주린 사자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려야 했고 로마시민들은 이를 보면서 피의 축제를 즐겼다. 드디어 크루소도 원형극장에 세워졌다. 그리고 쇠창살 안에 갇힌 굶주린 사자와 결투를 하게 됐다. 쇠창살이 열리자 굶주린 사자가 으르렁 거리면서 크루소에게 달려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사자와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벌리면서 포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자와 크루스는 서로 입을 맞추면서 기쁘게 상봉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사자는 크루스에게 은혜를 입었던 정글의 사자였던 것이다. 극장 안에 있는 로마인들은 크루스가 피범벅이 되어 사자에게 잡혀 먹힐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의외의 구경거리를 보게 된 것이다. 이때 크루스는 원형극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큰소리로 지나간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하기 시작했고 로마인들은 그 이야기에 감동 되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노예를 살려주어라"고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크루스는 결국 사형을 면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가시 하나를 빼준 것이 인연이 되어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도 건짐을 받았다는 사자와 노예의 이야기이다. 은혜를 베풀면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하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아도 감사하는 것은 좀처럼 찾기 힘든다. 우리는 지나치게 하나님께 구하는 것, 기도하는 것은 많지만 감사드리는 일은 별로 없다. 은혜를 받으려는 욕심은 많은데 감사로 표현하기를 싫어한다. 그리고 '내가 언제 은혜를 받았느냐'는 망각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은 "외식하는 신자는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할 줄은 알지만 그 위험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에는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했다. 은혜 받은 것은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지 모른다. 크루소라는 노예를 살렸던 사자는 아주 작은 은혜를 입었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아주 절박한 순간에 그 은혜를 되갚았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 이야기인가?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엄청난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그 은혜를 얼마나 쉽게 망각하고 사는지 모른다. 내가 숨 쉬는 것도, 아름다운 가정생활을 이루어가는 것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불어 사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인 것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올해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사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김일재목사 / 아천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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