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로 인도하신 하나님

[ 땅끝에서온편지 ] <5> 사역지를 확정하다... 우간다 김종우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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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1일(금) 11:10
 
   
▲ 케만선교회 부지에 세워진 김종우선교사 사택.

1997년 11월 말, 케냐는 대선을 앞두고 외국인들에 대해 경계를 높였고, 비자도 잘 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친구 선교사는 탄자니아에서 선교하자고 권했다.
 
마침 우간다를 답사겸 며칠간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고 12월 말까지는 사역지를 확정하기로 하고 특별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후 아내와 함께 우간다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 우간다로 간다고 하니까 선배 선교사들이 우려하며 만류한다. 우간다에는 유명한 강도 무리가 많다, 자녀 교육이 어렵다, 물이 없다 등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실제로 우간다를 방문해 보니 도시는 음산하며 곳곳에 전쟁의 상흔들이 남아있었지만, 시골은 매우 친근하며 푸근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1998년 1월 초에 가족들과 함께 이삿짐을 가지고 국경을 넘어 우간다 캄팔라 수도에 위치한 선배 선교사의 집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방 한칸을 빌려 네 명의 가족이 4개월 정도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 IMF가 터지면서 온 나라가 경제적 위기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교회들이 일제히 선교비를 절반으로 줄였다. 우간다에서도 집세가 비싸서 집을 얻기가 불가능했다. 아이들의 학업을 이어가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선교사를 사임하고 다시 한국교회로 돌아갈 수도 없다. 속은 타오르는데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다"며 운다.
 
우간다는 천주교와 성공회를 제외하고는 독립교회들이 부흥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교회 사역자들은 대부분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평신도여서 신학적 기반을 둔 목회를 하기 힘들고, 따라서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다.
 
선배 선교사들은 신학 교육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고 목회자들을 모아 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마침 필자가 속한 케만(KEMAN)선교회도 넓은 대지에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직은 학교 안에 거주하는 선교사 가정은 없었고, 모두 도시에서 오고가고 있었다.
 
어려운 경제형편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일년치 집세로 신학교 경내에 사택을 짓기로 한 것이다. 신학생 훈련에도 더욱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3개월만에 작은 집을 짓고 이사를 들어갔다. 마침 한국에서 후원교회 목사님과 장로님이 방문을 하셨다. 숲속에 집을 짓는 것을 보시고 "담장을 세우고 우물을 파라"며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신발 없는 어린이와 말씀을 사모하는 신학생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아 "여기가 땅끝이구만"하신다. 그리고 열심히 신학교 사역을 후원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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