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효자의 눈물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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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9일(수) 12:34

그대들을 향하여 눈을 뜰 때마다 나에게서 떠나버린 젊음을 되새겨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네. 그리고 아쉽기 보다는 먼저 오점으로 가득한 지난 내 삶의 기록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네. 남모르게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부분은 지울 수 없는 불효의 오점이네.

나의 자당께서 단산의 나이가 다 되어갈 무렵 예상을 깨고 나는 3대 독자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났었네. 내 부모님이 내게 주셨던 사랑은 세상의 어느 부모님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높고 깊은 사랑이었네. 그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듯 생생하게 살아 있네. 수시로 "너는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는 내 아들이다"하시던 부모님의 음성이 지금도 내 귀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네. 그토록 진한 사랑의 온천을 품어주던 나의 부모님은 가난했던 시절에 오셔서 가난하게 사시다가 가난하게 떠나셨네. 마땅히 20대 중반에 접어든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그 생활을 꾸려나가야 함에도 나는 노구를 이끌고 어렵게 사시던 부모님을 외면하였었네. 공부를 마치면 자식노릇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학을 졸업했었는데, 그 무렵 나의 부모님은 날 기다려주시지 않고 세상을 떠나셨네.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이 자식은 부모님께 단 하루도 정성드려 모시지 못한 불효 중에 불효의 죄를 범하였네. 이때마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길랑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는 송강 정철의 글을 소리 높여 읽다가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였네.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가 된다"고 하는데, 효의 모습을 내 자식에게 보여주지 못한 나로서는 자식의 효를 바라볼 자격이 없는 몸이 되고 말았네.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죄목 가운데 가장 용서받기가 어려운 죄가 불효임을 실감하고 있네.

나의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유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권에서는 '어짊(仁)'을 삶의 도리에 근본으로 삼고 있었네. 그런데 그 어짊이 성숙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바탕은 언제나 효(孝)에 두었네. 그래서 "효도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요, 만 가지 교화(敎化)의 근원이라"고 가르쳐왔네. 논어에 나온 이야기일세. 공자의 제자가 스승께서 어찌하여 정사에 참여하지 않는지를 물은바 있었다네. 그때 공자는 경서의 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오직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와 우애함이 정사(政事)를 행하는 것이니 그것이 위정(爲政)이거늘, 어찌 참정(參政)만을 위정이라 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네. 이러한 효의 문화는 특히 한국인에게는 매우 철저하게 전수되어 그 영향이 오랫동안 이 문화의 핵심으로 계속된 바 있네. 그러나 서구의 핵가족 제도가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효에 관한 사상은 유교의 전유물처럼 취급되고 고단한 전통의 유산처럼 여겨지고 있는 현실일세. 때로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무관한 삶의 형태라고 짜증을 내는 젊은이들이 종종 보이네.

그러나 세월은 결코 멈추는 일이 없기에 그대들의 젊음도 활짝 피었다가 지기 마련일세. 그대들의 자녀들이 배울 수 있는 효의 실천이 가정에서 이룩되지 않는다면 불효의 형태는 고스란히 보복이라도 하는 듯 자네들의 곁을 바로 찾아오기 마련일세. 창조주 하나님은 일찍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장수(長壽)를 원하면서도 불효의 기록 때문에 그 복은 포기를 해야 할 듯싶네. 부디 나와 같은 불효자의 눈물이 그대들에게는 없도록 해주시게나.

정장복총장 / / 한일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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