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제직회는 어떻게 했을까?

[ 교단 ] 새문안교회, 1924-1928년도 '新門內敎會 제직회록' 출간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12월 28일(화) 12:56
일제강점기 교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제직회록이 출간돼 당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한글 해설 등을 포함 영인본으로 출간된 신문내교회 제직회록(1914-1928, p3-4).

최근 새문안교회(이수영목사 시무)가 출간한 1914∼1928년도 '신문내교회 제직회록(新門內敎會 諸職會錄)'을 살펴보면 감옥에 갇힌 교인 가족을 원조하거나(1920.1), 일본 관동대지진 구제 연보(1923.11), 개성 수해 구제 연보(1924.8) 활동을 펼치는 등 일제치하에서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있었음에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신문내교회 제직회록'은 현재 보관돼있는 것으로는 새문안교회 최초의 제직회록이다. 붓으로 쓰였으며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고 있어 일반 교인들이 쉽게 접하고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을 감안해 현재 사용하는 한자로 바꾸고 다시 문체로 풀어내는 작업을 거쳐 출간됐다.

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찬송 합창이나 기도로 시작해 출석부를 점검하고 전 회의록 낭독, 각부 보고, 안건 처리, 기도순으로 폐회하는 것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장은 담임목사가 맡되 장로, 집사 외 영수, 조사, 매서인 등이 제직회에 참여한 것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제직회록에는 △남녀 출입구 내에 연보함 설치 △영어성경반 개설 △예배당 시설 개선 △교회 역사 편찬 등 교회 내부의 일 뿐만 아니라 구제 및 전도활동에 대한 내용들이 소상히 기록돼있으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영수, 권서, 면려회(기독청년층의 신앙과 사회활동의 증진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등도 등장한다. 십일례(십일조), 삼일기도회(수요기도회), 찬미대(찬양대), 친목회(간친회) 등 지금과 다른 용어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물별로 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새문안교회 설립자이자 초대 담임목사로 현재 양화진에 잠들어있는 원두우(언더우드)선교사, 그의 부인이자 명성황후의 전속 의사로 활동했던 원부인선교사, 새문안교회 최초의 한국인 담임목사이자 1928년 한국인 최초로 한국교회 역사를 정리('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편찬)한 차재명목사를 비롯해 김규식, 서병호, 장붕 등 독립운동가, 가곡 봉선화를 작곡한 홍난파, 김인식, 김형준 등 음악가, 세브란스 최초의 한국인 의사인 오긍선 등 초기 새문안교회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자 초등반이 국문보는 반, 국문못보는 반으로 나누어 있는 것은 그 시대의 문맹 상황과 교회가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 1910년대 새문안교회와 그 주변.
담임 이수영목사는 "지난해 교회 창립 1백23주년을 지내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초기의 한국교회 역사를 접하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소장하고 있는 많은 사료들 가운데 제직회록을 발간하기로 했다"며 "가장 오랜 역사만을 자랑하며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지나간 역사의 길이만큼 앞날의 역사를 멀리 내다보고자 한다. 과거를 잘 이해함으로 미래를 보다 더 잘 설계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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