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 같은 삶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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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6일(목) 15:51

오랜만에 동네 앞산을 등산했다. 까치들이 많다고 붙여진 까치산은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높지는 않지만 모처럼 한 번씩 다녀오면 며칠씩 다리에 알을 풀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산이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가 가장 등산하기 좋은 시간이고 산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 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뤄진다기에 등산시간을 그 시간에 잡다가 일 년에 열 번도 산에 오르지 못하는 건 틀림없이 삶의 우선순위보다는 게으름의 탓이리라.

낙엽이 다 지고 벌써 초겨울이 성큼 다가온 그날 등산로 옆에 섰던 푸른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익었던 나무인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굵게 보이는지, 사실 그 나무는 버릇도 없이 등산로를 침범하고 서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만지기도 하고 등으로 '쿵쿵' 쳐보기도 해서 윤기가 흐르던 나무였다. 그런데 그날은 소나무 껍질이 너무 투박해 있었다. 껍질과 껍질 사이에 골이 깊게 파여 있었고 거미줄도 붙어 있고 송진도 흘러내려 있었다.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 껍질들은 게딱지처럼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교정에 서있던 플라타너스나 농장 울타리 모과나무는 1년 정도 지나면 껍질이 떨어져 버려서 매끈하게 보이던데….

한참을 올라 숲속을 들어가니 멀리서 볼 때는 늘 푸른 소나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머리 위로 푸른 잎은 안보이고 멀리서는 안보이던 더덕더덕 껍질 붙은 나무만 보였다. 그리고 그 껍질은 소나무가 성장을 하면서 굵어지니까 껍질이 터지고 새 껍질에 밀려서 투박하고 볼품없는 코르크 껍질이 되어 밖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한때는 내피로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뿌리에서 올린 수분과 영양분을 운반하는 지킴이였는데, 세포가 살아서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최종적인 역할을 맡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수명이 다하게 되니 세포가 괴사하게 되고 새로운 속껍질이 생기는 산고 같은 성장통을 겪으며 껍질들 사이 깊은 골짜기 불그스레한 새 껍질에게 그 자리를 내 주고 있었다.

한해가 저물면서 존경하던 목사님 장로님들의 은퇴소식이 들린다. 한 평생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시던 어른들이 은퇴를 하시는 것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도 20년 전 이 교회에 부임할 때는 청년같은 분들이었고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셨던 분들이 은퇴를 하신다. 그분들이 은퇴하시면 젊은 세대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고 그동안 사역하고 헌신하던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시면 그분들이 받을 대접이 투박한 군더더기 같은 소나무 코르크 껍질 같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기우일까?

얼마 전 평소 가까이 모시던 목사님께서 90세로 별세하셨다. 평양 출신인 그분은 일본의 중고등학교와 M대학 경영학부에서 공부하다 성령체험 후 전도유망하던 길을 접고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신 어른이시다. 시골 한 지역을 젖소 마을로 만들어 가가호호 송아지를 입양시키며 복음을 전하다 가신, 어려웠던 6~70년대에 상록수같은 삶을 사셨던 어른이다.

일본에서 돌아와 첫 목회를 했던 시골교회에서 교회를 떠난 지 45년이 지났는데 그때 어린 주일학교 학생들이 이제는 교회의 중직자들이 되어서 담임목사와 여러 교인들이 문상을 왔다. 그리고 그 때 교회가 했던 약속처럼 준비해둔 장지에 자신들이 목사님을 모시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은퇴했던 교회에서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당연히 우리가 모셔야 한단다.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교역자 없는 그곳의 담임목회자가 되어 부모님처럼 형님처럼 아름답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제 그 사랑을 고맙게만 받고 유언에 따라 한 움큼의 재가 되던 그 장례식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든지….

곽종복 / 목사 ㆍ 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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