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생활수준은 목회자 생활수준 만큼 올라간다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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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01일(수) 16:03

목회의 목적중의 하나가 교인들의 생활 변화와 그 수준 이 올라가는 것이다.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변화되어져야 한다.  만약 목회는 열심히 하는데 교인들의 생활수준이 전혀 변화가 없다고하면 목회가 전혀 안되고 있다는 증거다.

신자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목회자는 강단 수준을 높이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좀처럼 신자의 생활 변화가 오지 않는다.

목회자는 "내가 강단수준을 높였는데 왜 신자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가지 않는가"라고 신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기가 쉽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목회가 피곤해지고 실망이 커진다.

그러나 목회는 강단에서 말씀 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전한 말씀을 실제 생활로 나 자신이 먼저 그대로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

만약 목회자가 강단수준은 높였지만 자신의 생활수준은 강단 수준만큼 올라가 있지 않으면 신자들의 생활수준은 올라가지 않는다.

신자들은 목회자의 강단의 말씀을 듣는 일과 목회자의 일상생활을 보는 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강단을 통해 듣는 말씀은 이론으로 받고 그 이론을 전해준 목회자의 생활과 실천을 보고 검증을 한다.

목회자의 전해준 이론 그대로 실천하는 생활을 직접 보면 크게 감동하며, 액면 그대로 받아 드린다. 그리고 본받게 된다. 만약 목회자의 실천과 생활이 전해준 말씀과 맞지 않으면 교인들은 갈등이 오고, 실망하며 배반도, 타락도 있을 수 있다.

목회자의 말 즉 Speaker만으로는 교인들의 생활수준은 올라가지 않는다, 목회자의 본(本) 즉 모범(Model)으로만 교인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간다. 예수께서 진리를 묻는 사람에게 "와 보라"고 하셨다(요1:39) 진리를 들려주실 뿐 아니라, 보여 주시고 확인 검증시켜주신 것이다. 바울 사도가 "나는 그리스도를 본 받았다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전 11:1)고 하였다. 이것이 목회다.

나는 목회 초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설교를 하였는데 교인들이 별로 은혜 받는 이가 없었다. 마음에 상심이 되고, 좌절감이 일어나 교우들에게 나가 인사하는 것도 포기하고 강단 뒤에서 "이놈을 죽여주십시오. 말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 살아서 무엇 하겠습니까?"하며 흐느껴 기도한 일이 있다. 그러나 "나의 생활이 부족하오니 죽여주소서"하며 결사 기도한 일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강단 수준은 높이려고 몹시 노력하면서도,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한 것은 부족하였다는 증거다. '회개하라' '기도하라' '주일성수하라' '전도하라' '예배를 중요시하라'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라' '바치라' '가정예배 드려라'라고 외치는 목회는 피 가 나도록 열심히 하였는데, 자신이 외친 말씀을 실행하기 위한 생활 실천 목회는 뒤따르지 못하였다. 보여주는 것은  미흡하고 들려주기만 하는 목회로서는 신자들의 생활 변화가 오지 않는다.

더욱이 세상만사가 올라가기는 힘들고 내려가기 쉽듯이 좋은 모범은 오래 해도 본받기 힘들어 하다가도 나쁜 본은 당장 본받는다. 신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목회자를 닮는다. 목회자가 기도 많이 하면 점점 교우들이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게 된다.

목회자가 정치적으로 교회 일을 해 가면 중학생들까지 회장 선거하는 일을 정치적으로 한다. 심지어 기도하는 어조까지 목회자 하는 식으로 닮는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책임이 중하다. 사람은 장점이 많아도 단점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에 내놓을만한 훌륭한 장점이 많다.

반면에 결정적인 단점도 많다. 도리어 결점 때문에 장점이 무색해지고 있다. 이제는 단점을 속히 고치지 않으면 장점까지 무너지게 될 것이다. 바로 장점과 단점 양면이 모두 목회자의 책임과 영향이라고 본다. 거짓말 속임이 생활에 배어있다. 심지어 거짓말을 죄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속히 정직한 교인과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 싸움과 분열이 많다. 교회에서 싸우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크게 두려운 일이다. 시급히 화목 화합하는 신자와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세속적 타락성이 빠르게 오염되고 있다. 세속은 영육이 썩어버리는 난치의 마지막 말세적 무서운 죄악이다. 결단을 내려 경건과 절제의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한다.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목회자인 내가 강단에서 외침과 동시에 생활수준을 높여 언행일치로 교회와 신자들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해산하는 고통을 하여서 본이 되자. 이것은 결코 세상이 말하는 윤리 도덕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정직, 화목, 경건절제의 본체이시다. 하나님 없는 윤리 도덕은 이루어지지도 않거니와 이루어져도 아무런 복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종답게,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자. 모든 생활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하시면 생활의 본질변화가 오게 되어있다.

그럴 때 목회자인 나의 강단 수준을 높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생활수준으로 입증과 확인 검증을 주는 목회가 이루어진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해 주실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한국교회가 쓰임 받으려면 여기서부터 확실해져야 한다.

림인식목사/증경총회장
노량진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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