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적은 이유? '역사 의식 부재' 때문

[ 기고 ] - 한국기독교근대문화유산도록을 출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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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화) 17:49

지난 19일 앰배서더 호텔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한국기독교근대문화유산도록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날 필자는 한기총 내에 기독교문화재발굴보전본부 본부장 자격으로 이 도록을 만들어 출판을 하게 되었으며 도록의 편저(編著)로 참여했다. 이 도록을 만들기 위해서 4년간(2006-2010) 이 일에 힘을 모아 도록이 출간하게 됐다.

도록에 수록된 문건은 1백68개로서 내용을 살펴보면 서울특별시(25개)를 비롯해서 대구(6개), 부산(5개), 인천(9개), 광주(7개), 대전(3개), 울산광역시(2개)와 강원도(7개), 경기도(17개), 경남(7개), 경북(14개), 전남(23개), 전북(19개), 제주(6개), 충남(14개), 충북(4개) 등에 산재해 있는 국가 및 지방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는 곳과 또 우리 총회에서 지정한 기독교문화재를 중심해서 역사적으로 정리를 하였다.

도록에 삽입된 사진은 4백2컷이나 된다. 사진은 건물, 비문, 동상, 인물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라남도가 61개로 가장 많았다. 서울이 58개, 전북이 43개, 경기도가 38개, 충남이 34개, 경북이 28개, 경남 17개, 강원이 15개, 제주와 충북은 각기 14개가 수록됐다. 이중 전남과 전북지방이 사진이 많이 수록된 이유는 6ㆍ25 전쟁 시 순교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자연히 그 현장을 정리했던 이유가 되겠다.

특별히 다른 종파에 비해서 문화재가 적은 이유는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대개 개신교 쪽은 교회가 성장을 하게 되면 옛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신축해 놓기 때문에 자연히 문화재로서 보존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는 경우이다.

가령 1887년에 설립했던 새문안교회는 역사가 있는 건물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1987년 새문안교회 1백주년을 맞이해서 기념교회를 신축을 하고 그 교회당 앞에 1897년에 제작된 종을 언더우드 선교사 후손인 원일한장로가 기증을 하였다. 여기에 본당 옆에 역사사료관 입구에 6ㆍ25전쟁 시 납북되었던 김영주목사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으며, 역사사료관 내에는 많은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그러나 같은 해에 설립되었던 정동감리교회는 1897년에 건축했던 그 건물이 보존 되어 있으며, 1백주년 기념교회는 그 옆 대지를 확보하여 신축을 하였다. 또한 교회 정원에 들어서면 이 교회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교사의 동상과 2대 목사였던 최병헌 목사의 동상이 서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도록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수시 율촌면에 있는 장천교회이다. 이 장천교회는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옛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교회당 옆에 있는 대지를 확보해 두 번째 건축을 하였으며, 다시 교세가 확장되자 그 교회 건물을 헐지 않고 다시 대지를 마련해 바로 옆에 세 번째 건물을 신축했다. 3개의 건물이 나란히 있어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교회가 되었다.

특별히 경북 영천 자천교회는 경북 도청으로 부터 2억 4천만 원을 지원받아 전문가들의 고증을 받아 2006년에 준공을 하였다. 나무와 기와로 된 25평의 예배당 기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교회 뜰 안에 이 교회의 설립자인 권헌중장로의 기념비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한 예로 보아 교회들은 기존 건물을 헐고 새로 신축하려 하지 말고 옛 건물을 복원해서 기독교문화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수진 / 목사 ㆍ 교회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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