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빌리아 버가에서의 사건

[ 연재 ] 사도바울행전III. 바울의 전도 여행(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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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6일(화) 19:26

   
▲ 버가에 있는 바울 시대의 성문.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행 13:13).

바울 일행 세 사람이 소아시아를 향하여 바보를 출항한 것은 주후 45년, 또는 주후 48년 늦가을로 고증되고 있다. 바울은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를 외면하였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요 4:44).

그들을 태운 배가 항구에서 떠나자 뾰족뾰족한 산들의 윤곽이 마치 금단의 벽처럼 눈 앞에 나타났다. 바울은 마가에게 앞으로의 전도 계획을 밝혔다.

바울은 얼음과 눈이 덮인 저 산을 넘어서 이교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마가는, 바울이 저 산 너머에 살고 있는 이교도들의 흉포함을 알지 못하는가 보다고 생각하였다.

그 무렵 소아시아는 여러 인종이 살고 있었고, 사투리와 미신과 이상한 제사를 지내는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다. 도시마다 고유한 수호신이 있었고, 해안 지대에는 동방의 제사 의식과 비법(秘法)을 행하는 밀교(密敎) 제사장들이 득실거렸다.

밤빌리아는 로마 제국의 군정(軍政)이 시행되던 곳으로서, 집정관 또는 군정관이 통치하고 있었다. 다른 각 주와 마찬가지로 밤빌리아에는 로마 제국이 파견한 제사장이 있었다. 그들은 로마 황제와 로마의 신들을 모신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며, 거액의 기부금을 모으고 있었다.

바울 일행은 앗달리아 만 케스트로스 하구에 상륙하였다. 앗달리아 시에 있는 해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채가 오렌지와 레몬빛을 쏟으면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행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앗달리아 북쪽 40킬로 지점에 있는 버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길은 점점 험해지고 자갈밭이 이어졌다.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찌르는 듯 차가웠다. 마가는 투덜거렸다. 왜 자기들은 이렇게 험한 산을 넘어야 하는가. 행선지에는 시나고그도 없을 것이고, 유대인 지구에 이르러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는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버가의 여인숙에 이르러 마가는 삼촌인 바나바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바나바는 가이사랴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항구로 가는 조카 마가를 붙들지 못하였다. 전도 여행은 위험이 따르는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도 여행을 시작하자 마자 떠나간 마가의 행동은 바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바울은 주 예수의 말씀을 생각하였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리라"(눅 9:62).

바울은 오랫동안 마가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제2회 전도 여행에 즈음하여, 마가 요한의 동행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는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해 후에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마가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 4:10). 전설에 따르면 마가는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설립하고 전도하다가 순교하였다.

현재 앗달리아 항구는 예전과 같이 밤색 바위에 둘러싸여 있다. 동북쪽에 위치한 버가의 유적지는 성문과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과 교회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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