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문화) 코드와 컬트(이단) 코드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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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1일(목) 12:02

사회의 대표적인 문화와 생활양식을 상징하는 컬처 코드(culture code)가 있는 것처럼, 이단들에게도 특징적인 컬트 코드(cult code)가 발견된다.

문화인류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그의 저서 '컬처 코드(The Culture Code)'를 통해, 미국인의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컬처 코드를 마케팅에 적용하는 시도를 한다. 미국 사회학계의 석학인 로버트 벨라도 미국의 개인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한 '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에서 유사한 시도를 했다. 이러한 분석과 접근을 통해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사회는 사회적 공통분모를 찾아 나아가는 한편 다양한 경제문화활동에 실제적으로 적용해 오고 있다.

다양성의 미국사회와는 달리, 동질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사회에도 이러한 컬처 코드가 현존한다. 주창윤은 '대한민국 컬처 코드'에서 2000년대 한국사회를 읽는 다섯 가지 코드, 즉 '유목민 코드'(인터넷을 떠도는 블로그, 카페), '참여 코드'(월드컵, 촛불시위), '몸 코드'(몸짱, 얼짱), '섹슈얼리티 코드'(동성애), '역사적 상상력 코드'(실미도, 선덕여왕) 등을 통해 한국사회를 분석한다.

컬처 코드는 중요하다. 상대의 컬처 코드에 대한 몰이해는 관계의 갈등으로 쉽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대립과 갈등, 특히 정치적, 지역적인 긴장과 충돌에서 이러한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컬처 코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갈등구조 속에서는, 집착(執着)이 신념(信念)으로, 욕심(慾心)이 명분(名分)으로, 그리고 광기(狂氣)가 열정(熱情)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한편 한국이단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컬트 코드(cult code)도 있다. 최근 이단들의 컬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가 불가능하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최근 이단들에게서 '사회봉사활동' '비상식적인 포교활동' '세계화' '문화' '꿈나무 교육' '언론 이용' 등의 컬트 코드가 발견된다. 하나님의교회, 신천지, 구원파, 통일교, JMS 등 대표적인 한국이단들은 이러한 코드를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하나님의교회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봉사활동 단체로 부각되면서 수많은 표창을 받고 있다. 신천지는 비정상적인 포교활동으로 교회에 불신과 불열을 조장하고 있다. 구원파는 산하조직인 IYF의 문화 활동을 통해 국내외 청년대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하면서, 국내 거의 모든 대학에 조직을 두고 활동한다. 통일교는 정치, 문화, 언론, 체육 등의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최근에는 포스트 문선명 체제를 굳혀 나아가고 있다. JMS는 교주 정명석 씨가 10년 형을 받고 감옥에 있지만 오히려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피해는 급증하고 있다.

교회가 이단들보다 더 사회적인 순기능을 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진화(進化)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이단들에 대한 대처는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교회의 본질은 '이단 비판과 대처'가 아니라, '말씀 사랑과 실천'이다. 이단을 어떻게 섬멸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살아가느냐의 문제이다. 이단 논쟁보다도 교회의 본질 회복이 우선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컬처 코드와 한국교회의 컬트 코드에 대항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 코드(church code)의 생성과 계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제95회기 총회의 주제가 '다음세대와 함께 가는 교회'로 정해졌다. 지난 달 개최된 총회정책협의회에서는 '다음세대'를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다음세대'를 위한 총회의 관심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컬처 코드'를 선도(先導)하고, 한국이단의 '컬트 코드'에 대항(對抗)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 코드' 만들기의 첫 걸음이기를 소망한다.

탁지일 / 교수ㆍ부산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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