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종교개혁

[ 생명의양식(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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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1일(목) 11:33

▶ 본문 :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종교개혁의 표어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이었다. 그것은 1517년 10월 31일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개혁문을 발표한데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은 종교개혁의 기본으로써 오직 복음만이 기독교의 진리 됨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주의란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오신 시대는 유태주의(Hevrism)와 헬라주의(Hellenism)시대이다. 유태주의는 율법주의, 신본주의이며 헬라주의는 인본주의로써 예수님은 신인조화주의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참사람이시다. 즉 신인조화주의가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도 유태주의 극열분자인 바리새인을 책망하셨고 심지어 당시 예루살렘 성전도 비판하였다.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3일만에 다시 건설하겠다고 하여 유대교의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이 십자가의 복음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기독교 역사는 이 십자가의 복음에서 멀어질 때 부단히 개혁정신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봉자이다. 그는 독일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였다. 루터는 그 당시의 신앙 생활대로 열심히 마리아를 섬기고 성자를 숭배하고 여러 성자를 열심으로 숭배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학시절에 많은 문제에 깊은 사색에 빠졌다. 사고로 중상을 당하기도 하고 중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인생문제에 대하여 번민하게 되었다. 그는 에르푸르트(Erfurt)대학에서 스콜라철학과 라틴문학을 전공하였고 법학을 전공하다가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교단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의 길을 걸었고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논리학, 물리학, 신학교수가 되었다. 그때 교황 레오 10세의 속죄표 판매에 반대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95개조의 항의문을 선포함으로 종교개혁의 봉화를 든 것이다. 루터의 신학사상은 이신득의와 만인사제주의와 오직성경이다. 칼 5세가 소집한 보름스(Warms)국회에 출두하면서 순교를 각오하고 그 회의에 참석하여 종교개혁의 의지를 선포한 것이다.

칼빈의 개혁운동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노와이용(Noyon)에서 법률가 제라트(John Gerad)의 5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파리대학에서 라틴어, 철학, 인문과학, 법률을 전과하였다. 칼빈은 1535년 27세의 젊은 시절에 저 유명한 '기독교강요'(Institutio Religionis Christianae)를 저술하여 종교개혁의 지침이 되게 하였고 그리고 신구약주석, 신앙문답서, 설교서신, 세네카의 주해 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그의 신학사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사상으로 ①인간의 전적타락 ②무조건적예언 ③제한선택 ④불가항력적 은총 ⑤성도의 견인이다. 이 사상은 가톨릭의 의식과 미신적인 예식을 일소하는 영향력이 되었고 칼빈의 신학과 사상은 장로교의 기본신앙사상이며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근간이기도 했다.

한국교회의 개혁문제
한국의 가톨릭의 전래는 1594년 12월 28일 임진왜란 시대에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포르투칼 신부, 그레고리오 사스페레스에 의해 전래되었고 기독교는 1885년 4월 5일에 언더우드, 아펜셀러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는 일본의 세력이 우리 민족을 압박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처음엔 선교사 공의회가 한국교회를 관장하였고 1907년에 독노회로 조직할 때 교회 수 7백86교회, 교세는 7만 교세였다.

 독노회에서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7명의 목사를 안수하였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으로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1912년에 교회수 3천5백교회와 13만 교세로 총회를 창립하였다. 이 총회에서 백만구령운동과 전진운동을 결의하여 그 결과 3ㆍ1운동을 주도한 것이 한국교회이다. 이 운동의 연장선에서 상해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임시정부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해방되어 한국에서 대한민국을 수립한 역사로써 한국교회는 민족의 소망으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해방 이후부터 한국교회는 분열되기 시작하여 고신, 기장, 통합, 합동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교단으로 분열하였고 교회는 분쟁의 모습을 드러내어 우리민족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5천만 인구중 1천 2백만에서 교세는 맘춰서 있다. 그리고 저 북한까지를 고려할 때 지금 한국교회는 잘못된 교회를, 다시 복음으로 개혁하여 민족 복음화와 남북통일과 세계선교를 위해서 오늘의 루터와 칼빈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박영선목사 / 봉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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