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이 '놀이'라고?

[ 마이너리티 리포트 ] <우리 함께 걸어요> 가출 청소년 연령 낮아지는 추세, 교회의 관심 필요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11월 09일(화) 11:23
"친구가 같이 가출하재요. 부모님은 매일 싸우기만 하고 저한테는 관심도 없어요."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출은 더이상 '문제 행동'이 아니다. 답답함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까닭에 가출이 '놀이' 혹은 '여행'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집에 들어가도 부모가 없거나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아 거리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밤을 지새우고 부모가 출근한 이후에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실상 가출'도 늘고 있다. 가정과 거리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 지난달 발표된 '2010년 청소년 쉼터 실태조사'에 의하면 가출 청소년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거리 도처에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놀이로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가 성매매, 금품 갈취 등 거리에서의 생존법을 터득하게 되면 가정으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은 더 낮아지게 된다. 또래 집단에 이끌려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되기도 쉽다.

청소년들의 가출 연령 또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2010년 가출 청소년쉼터 실태조사'에 의하면 가출 청소년 열명 중 다섯명이 13세(중학교 1학년) 이전에 첫 가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국 79개 쉼터 이용 청소년 5백53명 및 운영요원 2백68명을 대상으로한 결과로 최초 가출 연령이 남자는 13.3세, 여자 13.8세로 점차 어려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출 기간은 남자 평균 1백61.1일, 여자 평균 1백82.3일로 27.2%가 6개월 이상의 장기 가출자로 나타났다. 가출의 주 이유는 부모 간의 불화(21.3%), 부모의 폭행(13.0%), 지나친 간섭(10.3%) 등 가족적 요인(59.8%)이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 쉼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귀가를 원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응답했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줘야할 가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청소년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가출 전 가족 형태를 보면, 편부모(34.5%), 재혼가정(15.9%), 친척·형제(15.6%), 시설위탁부모(5.6%) 등 71.6%가 부모 아닌 다른 사람과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오후 10시 신림역 이동청소년쉼터.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심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한두명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쉼터는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 추위를 피해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 뿐만 아니라 이동쉼터 상담원들과 자원봉사자 등 '언니 오빠'들이 있는 곳이다. 이날 만난 수진(가명, 14세)이는 "마음이 편해서" 쉼터에 찾아온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묻자 수진이는 고개를 내저었지만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는 "부모님이 보고싶을때면 사진을 본다"고 답했다.

   
▲ 매주 연신내, 천호, 여의나루, 신림역 일대를 순회하는 서울시이동청소년쉼터 '누리'.

햇수로 4년째 가출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있는 이나경씨(서울시립이동청소년쉼터)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소개하며 가출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을 우선과제로 제시했다. "그렇게 하지마, 니가 잘못한거야"라고 타이르기 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보듬어주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것.

이 씨는 "종합사회복지관만 봐도 기독교 복지가 활동력을 잃지 않았나 싶다. 청소년 쉼터도 기독교(개신교)보다 카톨릭이 더 많다. 교회에서 가출 청소년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며 "가출 예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교육'으로 상담 프로그램 제공, 세미나 개최 등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지역사회내 많은 교회들이 있는만큼 쉼터와 연계할 수 있는 협력방안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들이 잘 곳이 없어 찾아오면 교회 청소라도 할 수 있도록 해서 잠자리를 제공해줬으면 한다"며 가출 청소년들을 케어하고 있는 인근 지역의 모 교회가 이단이 아닌지 염려된다는 말도 전했다.

청소년 쉼터는 이용기간에 따라 일시(24시간 이내), 단기(하루에서 3개월), 중장기(6개월 이상)로 구분된다. 하지만 전국에 운영중인 청소년 쉼터는 일시, 단기, 중장기를 모두 포함해도 7∼80개에 불과해 가출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는 속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렇다면 본교단 산하 기관 및 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는 얼마나 있을까? 사회봉사부 이명숙목사는 "또하나의집, 유드고선교회, 청소년사랑샘터 등 그룹홈은 있지만 쉼터 형태로는 없다. 드러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며 "총회 창립 1백주년 기념백서 발간을 준비하며 정확한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중에 있다"고 전했다.

서울YMCA는 그동안 운영해오던 단기쉼터를 올해초 폐소하고 서울시 지원예산으로 운영되는 이동쉼터를 위탁경영하고 있다. 서울Y의 이동쉼터인 '누리'는 매주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연신내(화), 천호(수), 여의나루(목), 신림역(금) 등에서 가출 청소년들을 발굴하고 일반 청소년들에게 가출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등 순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 만연해있는 단기, 중장기 쉼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고 쉼터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며 연계해주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쉼터의 수가 적어 만만치가 않다고 한다. 자원봉사, 물품, 재정 지원도 절실한 상황이다.

한편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이사장:조순태, 이하 쉼터협)는 홈페이지를 통해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자살 등 분야별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을 가장해 상담신청을 해보니 클릭과 동시에 실시간 채팅창이 실행됐다.

 <친구> 고객이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상담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상담자> 안녕하세요?
 <친구> 안녕하세요.
 <상담자> 친구는 어떤 문제로 상담받고 싶어서 왔나요?

채팅을 통해 만난 상담원은 "지금도 더블 상담 중"이라며 "이미 가출을 했거나 가출을 하고자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상담이 이루어지며 안전하게 쉼터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연계한다"고 했다. 최근 쉼터협은 △정부당국은 가출 청소년들이 자유와 책임을 충분하게 배우는 조건을 세워 줄 것 △청소년 가출예방, 조기발견, 현장지원은 청소년쉼터 사업(이동형쉼터, 고정형쉼터)임을 인정해줄 것 △고위기 청소년과 24시간 함께 지내는 청소년쉼터 종사자의 인건비 인상 등의 내용으로 가출 청소년 문제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을 실시했다. 앞으로도 정부의 청소년 관련 정책 수정을 위해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 가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과 관심 뿐이다.

현장에서 만난 가출 청소년들은 여타 또래의 청소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식에 바퀴벌레 다리가 들어갔다"며 장난을 치거나 7백원을 벌고자 자원봉사자를 돕는 모습 등은 천진난만하기까지 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과 관심 뿐이다. 거리의 청소년들을 향한 교회의 관심이 이제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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