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동역자 마가

[ 연재 ] 사도바울행전III. 바울의 전도 여행(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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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03일(수) 16:34

   
▲ 복음 선교의 전초 기지 수리아 안디옥의 현재 모습.
안디옥 교회는 열심 있고 활기가 넘치는 교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 전도 활동의 전진 기지였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라는 주 예수의 명령에 날이 갈수록 사명감을 느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주의 뜻을 알기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선교사 후보는 바나바, 흑인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니엔 그리고 사울(바울)이었다. 성찬식이 끝나고 투표함이 준비되었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방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였다.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선지자 중 한 명이 성령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
선거할 필요가 없었다. 안디옥 교회의 장로들과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바나바와 바울에게 안수하여 선교사로 보냈다. 주후 48년의 일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외에 있는 농장을 가로질러 실루기아 항구로 내려갔다. 실루기아의 유적은 안디옥 서남쪽 20km 거리에 있다. 두 선교사는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 서남쪽 90km 지점에 있는,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키프로스) 섬에 갔다. 구브로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의 회당도 있었다. 바나바와 바울의 전도 활동은 구브로 섬의 동쪽 항구 살라미에서 시작되었다.

고향에서 전도를 시작한 바나바는 전도 동역자로 요한을 임명하였다.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의 열심 있는 신도 마리아의 아들로서, 로마식 이름인 마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이었다(골 4:10).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행 12:12)의 집은 오순절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던 곳이다(행 1:13~14). 그 집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신 유서 있는 곳이다(막 14:15).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마가 요한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던 듯하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 14:51~52).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다. 그가 만년의 예수의 모습과 교훈, 더 나아가서 사도들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 동역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증인이었다(몰턴).

그러나 마가 자신은 복음 전도 사역을 하는 일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구브로에서만 두 사람과 동행하고, 다음 행선지 밤빌리아 버가에 도착하는 길로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마가가 떠나간 때부터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행 13:9)을 '바울'이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하던 것을 '바울과 바나바'라고 순서를 바꾸어 표기하고 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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