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왜 보아야 하는가?

[ 최근신학동향 ] 최근 신학 동향  9. 예술신학(기독교 미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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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7일(수) 17:01

   
▲ '게르니카'(1937년, 캔버스에 유채, 349.3 × 776.6cm), 파블로 피카소 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소장.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1881~1973)는 큐비즘(Cubism)을 창안한 화가이다. 큐비즘은 말 그대로 입체적으로 그리겠다는 말이다. 큐비즘의 입체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입체와는 다르다. 큐비즘은 거의 해부에 가까운 입체이다. 법의학에서는 시체해부가 필수적이다. 살인의 동기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시신을 해부해 그 내용물을 보고 시체의 죽은 시각 및 원인을 규명한다. 마찬가지로 피카소에 의한 입체는 사물을 자신의 나름대로 절단하여, 그것을 형상화하고, 형상화 하는 과정에서 그가 그리고자 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한 작품을 예로 들자면, 그의 그림 중 '우는 여인'이 있다. 이 작품에서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겉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아니라 그 눈물이 흘러나오는 원류인 가슴까지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그 눈물의 근원을 파헤침으로써 눈에서부터 가슴까지 해부하듯 쪼개어 입체적으로 만들어서 절규하는 여인을 창조해 내고자 함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게르니카(1937년 作)'도 마찬가지이다. 이 그림은 독재자 프랑코를 돕는 히틀러의 공군이 바스크족의 수도 게르니카를 밤에 폭격하여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잔인무도한 만행을 고발하는 그림이다. 피카소는 이런 참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전쟁 자체가 무차별 폭행과 참상을 만들어내는 고로 그림 자체도 무차별하게 해부되어 입체적 조형을 만들지 않으면 도저히 그 참상을 알릴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중앙에서 절규하는 말은 이미 목과 몸뚱아리는 뿜어져 나오는데, 그것이 말의 혀처럼 표현되는 칼의 모습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나 어른할 것 없이, 그들의 몸과 머리는 잘라져 나가고 해체되었다. 머리는 이미 영혼이 되어 떠돌고 있고, 나둥그러진 육체는 비틀어져 버리고, 다른 개체들과 서로 어울려 극도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그림 오른편에는 절규하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사람이 보이고, 그림 왼편에서는 이미 희생된 제물처럼 보이는 소가 등장하고 있다. 소머리에는 이미 투우사의 창끝이 그 머리를 뚫고 올라와 있고, 그 소의 밑에는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어머니가 보인다. 그것은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피에타'를 그린 수많은 작가들이 표현했던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슬픔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캄캄한 중에 이미 영혼이 되어버린 한 영혼 위에서 내밀어진 팔과 손에는 등불이 쥐어져 있다. 캄캄한 중에도 빛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처절한 비극 속에서도 빛을 찾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가장 큰 소망으로 빛나는 눈이 있다. 그림 상단에 빛나는 눈 속에 전구가 들어있는 발광체를 그려 놓았다. 이것이야 말로 오늘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이시며, 그것이 바로 전쟁 속에서도 인류와 미래의 소망인 것이다.

피카소는 그의 그림에서 애써 기독교적인 테마를 빌려온 적은 없으나 그의 그림 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는 형상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원래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큐비즘은 또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찾는 방안이 될 것이다. 피카소 자신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찾지 않는다. 다만 발견할 뿐이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장 20절)

최민준목사 / 선한이웃교회/장신대ㆍ한일장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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