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예배 참석 어려웠을 뿐...."

[ 교계 ] 故 황장엽 씨와 우정 나눴던 주선애교수 회고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10월 13일(수) 10:21
"8년동안이나 아침 8시 반이면 매일 안부 전화가 왔는데 어제는 전화가 오지 않아서 이상했어요. 전화해도 받지 않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외출하고 돌아와서 다시 연락해보려고 했는데… "

   
▲ 지난 2월 27일 故 황장엽씨(中) 생일날 방지일목사, 주선애교수와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

망명 후 혈혈단신으로 외로운 생을 이어온 고인을 추억하는 노교수의 목소리가 떨리는듯 하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씨(87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에서 만난 주선애교수(장신대 명예, 86세)는 벗을 잃은 슬픔을 애써 뒤로 하고 동향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빈소에서 만난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 교수는 고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 '어머니'였다. 매일 걸려온 전화에 특별한 내용의 대화가 오고간 것도 아니었다. 황 전 비서는 그저 "건강하슈?",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등 간단한 안부를 묻곤 했다고 한다. "허전함에 그랬던 것 같아요. 일가 친척이 숙청당한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어요. 정말 힘들었을 거에요."

8년간 고인의 생일잔치는 항상 주 교수의 집에서 열렸다. 고향인 평양 음식도 준비하고 지인들과 함께 모여 가족의 정을 나눴다. 올해는 처음으로 주 교수의 생일잔치를 고인이 마련해줬다고 한다. 탈북자의 '대모'로 불리우는 주 교수와 북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고인의 염원도 한 방향을 향해왔다.

   
▲ 故 황장엽씨의 빈소. 양옆으로 주선애교수의 화환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향이 같아서 인사하러 갔다가 너무 안되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이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는데 아침, 저녁, 낮에도 생각날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2002년 평양에 다녀온 이후로는 더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어요.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위로하고 도와주면 마음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어요."

주 교수는 "마음으로는 믿었다고 확신한다"는 말로 황 전 비서의 신앙을 대변했다. 신분상 교회의 공식 예배에 참석하기가 어렵고 북한의 기독교인 박해를 우려해 종교적 입장을 뚜렷하게 표명할 수 없었을 뿐,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종종 함께 기도하기를 청하는 등 조금씩 신앙을 받아들여 왔다는 것이다. 황 전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씨 역시 기독교인으로 주 교수는 고인의 장례를 기독교 예식으로 치루기 원했다. 영락교회가 예식을 주관하는 것으로까지 의견이 오고갔으나 고인의 죽음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통일사회장'으로 치루기로 결정되면서 이는 최종 단계에서 무산되고 말았다.

   
▲ 지난 11일 황 전 비서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주선애교수.
한편 이날 빈소를 찾은 이철신목사(영락교회)는 "여러 종교 예식으로 장례가 치뤄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에서 총회 차원에서 정부에 개선안을 건의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고인의 평소 신앙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좋지만 정부가 결정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매뉴얼대로 따라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통일 시대에 큰 역할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했는데 갑작스레 고인의 부음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동안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신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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