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서 자유하려면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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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06일(수) 14:18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에 있어서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이 자유는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고,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었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처럼 자유할 때 인간은 비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역사창조의 파트너로서 창의와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지만(마12:1-8; 눅13:14-17), 오늘의 기독청년들이 괴로워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율법주의'이다. 누구보다도 자유와 기쁨이 충만해야 할 젊은세대가 마치 감옥의 죄수처럼 율법에 얽매여 있는가 하면, 어떤이는 자신의 행동만이 옳다면서 바리새인처럼 세상을 정죄하고 분노한다. 자신이 지금 율법 아래 종살이하고 있는지는 지금 내게 기쁨이 있는지에 직결된다(살전5:16). 참 자유인만이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천년전 율법의 잣대로 세상을 정죄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던 주님의 경고는 오늘의 젊은이도 경청해야 할 복음 중의 복음이다.

율법주의로 고민한 젊은이 가운데 필자도 들어있다. 고3시절, 일반대 보다는 학자금을 국가가 책임지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대학수업을 하려는 생각으로 입시를 준비할 때였다. 당시 고향의 선배가 육사생도로서 휴가 때마다 멋진 육사복장을 입고 활보하는 모습이 더없이 부러웠다. 늦가을 육사의 입시날짜를 확인하던 필자는 그 날이 일요일임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서 목사가 되기로 서약한 이래 성수주일은 필자의 필수였기에 주일에는 일체의 속된 일을 삼가고, 일요일 24시간 동안에는 시험기간 중에라도 절대 책상 앞에 앉지 않을 정도였다. 이같은 율법주의자가 어떻게 주일날 시험보러 간단 말인가? 결국 필자는 육사를 포기하고, 한남대와 장신대를 거쳐 목사가 되었다.

오늘도 필자는 당시 율법에서 자유케 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을 지불하고 죽으심으로써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안식후 첫날 곧 일요일에 부활하심으로써 구약의 안식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메시야가 오시면 성도가 누리게 될 참 안식의 그림자로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우리는 이미 참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성령님)과 매일 동거하는 천국시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만 안식하는 구약의 안식일로 되돌아 갈 필요가 없으며, 실제로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일요일로서 유대인의 안식일(토요일)과는 다른 것이다.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지키는 주일은 일주일의 첫날로서, 이 첫 열매를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드린다는 의미에서 다른 날과 구별할 뿐, 이 날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봉헌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일체의 상(商)행위와 오락의 금지가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율법준수와 자기 의(義)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는 주님의 공로를 무시하는 하나의 교만일 수 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고전 10:31) 주일날 그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고 본다. 주님의 부활 이후 성도에게 있어서는 모든 날이 거룩한 안식일이기 때문이다.

장영일총장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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