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교사의 지도력이란 무엇인가 <상>

[ 신교사대학 ] 신교사대학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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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06일(수) 14:10

"좀 더 실질적으로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과는 너무 어려워요. 그런 것을 좀 가르쳐주세요."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요청이다. 가르칠 내용은 많고 그 내용을 담은 형식은 어려우니 쉽고 잘 전달할 수 있게 그 틀을 제공해 달라는 교사들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있는 말이다. 하지만 교사의 지도력, 즉 가르침이 효율적으로 발휘되도록 하는 능력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관계되어 있는 말이 아니라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과 학생들에 대한 시선 즉, 관점에 맞닿아 있는 말이다. 지도력의 형성은 교사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대중들에게 알려진 '엘 시스테마'의 창설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 '남자의 자격'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아마추어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는 박칼린 감독, 아프리카 수단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고적대를 만들었던 고 이태석 신부, 이들에게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선생으로서의 비전과 열정이다. 학생들의 내면에 담겨져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바라 본 교사로서의 비전과 그 가능성들을 학생들 스스로도 믿고 자발적으로 이끌어 내도록 격려하는 열정을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가난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은, 내전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의 총구를 내리게 하고 평화를 노래할 수 있는 아이들이 가능했던 것은 한 존재 안에 깃들인 생명에 대한 긍정과 가능성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르쳐준 그들 '선생'이 있어서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 선생들이 보여준 비전과 열정을 '지도력'으로 읽어내기도 한다.

교회학교의 교사들에게도 가장 요구되는 지도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들의 조건과 현재의 모습으로 그들을 진단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갇혀있는 가능성을 바라 봐 줄 수 있는 교사, 그 가능성을 자신의 부모가 물려준 현실적 환경과 조건을 의존하거나 탓하는 것으로 묻어두고 살아가기 보다는 자신의 비전을 찾아 신나게 생활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교사의 지도력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현재 교회학교의 지향점은 교회학교 참여자들의 신앙성숙을 말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목표일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교회학교의 성장을 교회 성장의 한 축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비교육적 사고와 학생 출석 숫자의 증감에 따라 사역자를 평가하고 개별 부서의 활동을 평가하고 있는 수량적 사고, 그리고 그 수를 늘리는 역할을 하는 경쟁적 프로그램에 재정적 지원을 해가고 있는 물량적 관행이 팽배해져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교회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왔냐가 아니라 어떤 학생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숙, 변화해 가고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지도자, 또 그들이 성장해 가야할 모습과 방향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볼 수 있는 교회학교의 지도력이 필요하다.

교회교육은 교육을 통해 성도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복음의 정신을 삶의 원칙으로 긍정함으로써 교회와 교회 밖의 세상에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빌자면 '성령이 임하는 것'과 '권능을 받는'것이 교회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삶의 현장 역시 '땅 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로 오늘 여기에서 비전과 열정을 가진 '증인'의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교회교육의 목표요, 지도력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오현선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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