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를 위해 죽는 연어처럼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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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29일(수) 14:22

제95회 총회가 끝이 났다. 많은 안건들을 처리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폐회되었지만 모두의 가슴 속에 한 가지 화두를 남겨두었다. '다음세대와 함께 가는 교회!' 좋은 주제이지만 결코 가볍게 다룰 주제가 아니다. 그저 총회주제로 한번 사용하고 잊혀도 되는 주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다음세대를 잃어버리면 교회는 영원히 문을 닫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도 소용이 없고 지금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풍성함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도 미국 산호세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하면서 받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다. 예배실, 파이프오르간, 교육관, 찬양대 연습실 모두 다 갖춘 교회였지만 고요만이 감돌고 있었다. 다음세대를 준비하지 않았고 그들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손때 묻은 찬양대 연습실의 의자들을 만져 보았다. 낙서도 남아 있었다. 한때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찬양대의 화음이 울려 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세대와 함께 가지 못했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알라스카를 방문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 연어의 고향이라는 캐치칸에 들렀다. 마침 연어가 돌아 올 때가 되어서 작은 아이만한 연어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이 부화된 강을 떠나서 대해로 나갔고 이제는 장성한 연어가 되어 다시 다음세대를 위하여 알을 낳기 위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다리가 있었고 그 위에 수많은 연어 낚시꾼들이 모여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많은 연어들이 낚시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낚싯바늘의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온통 상처를 받으면서도 낚시주변을 맴돌고 있는 그들이 딱해 보였다. 그들은 낚시주변을 맴돌며 헛된 싸움을 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빨리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을 낳고 죽어서 다음세대를 준비해야 할 고귀한 사명을 안고 있는 존재임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위의 낚시꾼들과 주변을 맴도는 연어들을 보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땅히 서로 손을 잡고 강입구를 벗어나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 다음세대를 위하여 알을 낳는 사역을 감당하고 죽어야 할 지도자들이 강어귀에서 서로 싸우며 길을 막고 상처를 주면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힘을 낭비하고 있지나 않은지. 강어귀의 연어낚시에는 승자가 없다. 모두 패자가 될 것이다. 연어가 알을 낳지 못하고 강어귀에서 쓸데없는 다툼으로 소진하다가는 연어의 다음세대는 없다. 연어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서 알을 낳고 부화시키며 어린 치어들이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모두 주고 죽어서 다음세대를 준비한다. 만약에 한세대라도 이 거룩한 죽음을 거부한다면 연어의 다음세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낚싯바늘이 난무하는 다리 밑을 지나셔서 골고다로 오르셨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이어 주셨다.

다음세대는 지금 지도자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하나씩 둘씩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들에게 전달되는 생명의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연어의 죽음, 십자가의 희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리 아래의 싸움을 보면서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투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언제나 아래로 내려 갈수록 삼각형의 모습으로 다음세대가 든든히 바치고 있었던 구조에서 역삼각형이 된지 벌써 오래되었다. 이대로라면 다음세대는 없다. 산호세의 어느 텅 빈 교회처럼, 술집과 쇼핑센터로 변한 맨해튼의 교회처럼 한국교회는 현대사의 유적지로 변할 것이다. 다음세대와 함께 가야 한다. 다음세대가 실망하는 선거제도를 갱신해야 한다. 다음세대 앞에서 지도자의 죽음과 희생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배려하여 그들도 계속해서 생명역사를 기꺼이 이어가게 하자.

허원구 / 목사ㆍ산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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