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존 로스, 라요한의 우리말 성경 번역

[ 윤경남의 문화유적지 산책 ] 윤경남의 문화유적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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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15일(수) 10:45
'조선 땅에 말씀이 흐르고 흐르리라'

"성경 씻은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성경 태운 재를 입은 사람마다 크게 성장하리라!"

이것은 만주 개신교의 초대 선교사이며 조선의 기독교가 스스로 일어서게 만든 '예수셩교젼서'라는 신약성경을 우리말로 옮긴 스코틀랜드인, 존 로스(1842-1915)의 외침이었다.

   
▲ 에딘버러 뉴잉톤에 있는 존 로스-라요한의 묘비 앞에 서 있는 양승현전도사와 필자의 남편 민석홍장로.
그는 풍랑을 만나 압록강 변에서 산동 해안으로 떠밀려 온 의주 상인 이응찬과 그의 친구인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에게 세례를 주고, 한문을 아는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그런 다음 그들과 협력해 1882년에 누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를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번역한다. 그런데 만주 땅에서 만든 귀한 조선말 복음서를 조선 땅에 반입하는 일은 늘 실패했다.

이성하가 복음서를 동족에 전해주지 못하는 울분으로 그 복음서를 압록강에 던져버리고 일부는 불태워 그 재를 압록강에 뿌리면서 통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 같이 외친 존 로스의 마음은 더욱 뜨거운 그리스도에의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라요한'이라는 조선 이름을 가진 그의 예언대로, 압록강 물을 마시며 사는 만주 쪽 강변의 조선인 마을에 교회들이 생겨났고 멈춰 세울 수 없는 강물처럼 복음서도 마침내 조선 땅에 흘러들어 우리말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읽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 어린이들과 여인들도 읽을 수 있게 언문으로 번역한 배려가 조상들의 언어를 소중하게 전승하는 스코틀랜드인답다.

1895년에 문서선교의 일환으로 영국성서공회 조선지부가 조직된 것도 스코틀랜드 출신 조선인 라요한의 공로라 여겨진다.
희생을 각오하고 '오직 말씀만을!' 깃대 삼아 뛰는 여느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존 로스 선교사도 1872년 2월 27일, 스코틀랜드 장로회 인버네스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30세의 젊은 나이로 갓 혼인한 신부와 함께 중국 산동성 지부에 파송된다. 그 혹한의 땅에서 신부는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들을 낳은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만주선교를 마치고 1900년에 은퇴한 존 로스는 우리가 에딘버러에 있을 때 묵었던 샐리스버리 호텔에서 가까운 메이필드 연합자유교회에서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장로로 봉사했다. 그는 '동아시아 역사'(1877) '코리아 역사'(1879), '만주에서의 선교전략'(1903), '중국의 원시종교'(1909) 등을 저술하고, 1894년엔 글라스고우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1915년에 소천한 라요한은 에딘버러의 뉴잉톤 묘지에 안장된다. 2006년에 그가 사역한 교회 안에 뉴 칼리지 학생들과 그의 가족들, 한국인이 참석한 가운데 그의 사역에 대한 감사의 뜻을 한국말로 새긴 동판 제막식을 가졌다.

에딘버러 2010선교대회에서 폐회예배 설교를 한 이철신목사님과 일행들이 에딘버러대학 출신 하충엽목사님의 안내로 존 로스 생가와 유적지 등을 방문하는 '존 로스 루트'작전에 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에딘버러 한국교회의 양승현전도사님이 우리를 뉴잉톤 묘지로 안내해주었을 때, 조선을 사랑한 문서선교의 사도인 존 로스의 차가운 비석 위로 오뉴월 여름비가 겨울비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글ㆍ사진  윤경남
토론토 세인트 자일스교회ㆍ국제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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