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건넨 손에 다시 잡은 삶의 희망

[ 아름다운세상 ] '빅이슈' 판매 통해 희망 찾은 노숙인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0년 09월 15일(수) 09:43
   
▲ 이화여대 앞에서 빅이슈를 팔고 있는 홍삼용 씨.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시 마포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져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에도 빨간 조끼를 입은 60대 중반의 한 남성이 꿋꿋하게 잡지를 팔고 있었다. 비가 오면 길거리 장사들은 공치게 마련이라 으례 일찌감치 가판을 접고 집에 들어가기 마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성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기만 한다.
 
"노숙인의 자활을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 9월호가 나왔습니다." 지나가던 여고생 두 명중 한 명이 발길을 멈추고 잡지를 구입한다. 잡지를 구입하는 한 학생이 말한다. "이 잡지를 구입하면 노숙인 아저씨들 자활을 도울 수 있데." 옆에 있던 친구가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덩달아 한권을 구입한다. 구입을 마친 여고생들은 "아저씨 힘내세요"를 외치고 종종 걸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사는 소녀들도 웃고, 파는 아저씨도 웃는 참 행복한 광경이다.
 
지난 7월부터 '빅이슈'를 판매하기 시작한 홍삼용 씨(66세). 홍 씨는 지난 1998년 아내가 전신암으로 사망하자 삶의 의지를 잃고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아내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홍 씨는 아내의 부재(不在)를 견디지 못해 자살 시도만 3번이나 했을 정도로 삶을 포기하고 싶던 이였다. 홍 씨는 마지막 자살시도를 위해 차를 몰고 한강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찰나 "지금 받는 고통은 지옥불에 떨어지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죽음'으로 향해 있던 핸들을 '삶'쪽으로 틀었다.
 
막일과 쉼터 생활로 겨우 겨우 끼니를 해결하던 홍 씨는 '빅 이슈' 판매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단다. 현재 그는 빅이슈 판매사원 중 일등 판매사원 중 하나다. 땡볕이 내리쬐는 폭염 속에서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험상궂은 날씨 속에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빅이슈'를 외치는 모습이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법. 이화여대 학보사에서도 홍 씨를 취재하고, 일반 매스컴에서도 몇차례 보도가 된 뒤 홍 씨는 이대생들에게 유명인사가 됐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패션 트랜드의 완성은 손에 빅이슈를 드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노숙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본교단 휘경교회(한정원목사 시무)를 다녔다는 홍 씨는 "최근 삶의 의지가 충만한 가운데 다시 한번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살게 됐다"고 말한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개사해 부르던 노래의 가사도 "차라리 꿈이라면 깨어나지 말아다오"라는 절망적인 뉘앙스에서 "이 몸도 그대따라 천국 가거들랑 아~ 예수님 사랑하며 영원히 살자"로 바뀌었다.
 
또한, 올해 초부터는 하루에 '감사합니다'를 매일 천번씩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도의 영을 부어주신 것', '성령님이 나를 지배해주시는 것' 등 감사의 제목이 끝이 없단다. 신장질환과 고혈압 등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그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매일 매일 웃는 얼굴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고 한다. 불만이라면 지상파 방송국에서 자신을 취재한 후 신앙적인 내용은 싹 빼고 방송했다는 것 정도란다.
 
이렇게 감사와 희망의 기운이 넘치면 주위 사람들도 이러한 기운을 알아차리는 법. 주변의 상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잡지를 한두번 구입한 사람들은 항상 밝은 웃음으로 홍 씨를 바라보며 인사를 한다. 예쁜 여대생들은 자신의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홍 씨에게 "힘내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가끔씩 음료수와 간식도 건넨다.
 
홍 씨는 빅이슈 판매금을 차곡차곡 저축해서 언젠가는 꼭 식자재 사업을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빅이슈를 만나고부터 제 삶에 기쁨이 넘쳐요. 희망도 생기고 감사 제목도 늘고…. 나중에

   
▲ 영등포 청과물시장에 위치한 빅이슈 코리아 사무실에서 노숙인들이 잡지를 팔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천국에서 아내 만날 때 웃으면서 만날 수 있도록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야지요."
 
끝으로,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26장 13절을 응답으로 주셨다"고 말한 홍삼용 씨는 수업을 마치고 학교 정문을 향해 내려오는 한 무리의 여대생들을 보고는 다시 '빅이슈'를 손에 들고 그들을 향해 나아갔다.
 
취재를 마친 후 사무실로 와 찾아본 창세기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 26:13)."

 

# 빅이슈 코리아는?

노숙자들의 재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영국에서만 5천여 명의 노숙자들을 자립시켰으며 현재 36개 국가 1백7개의 형태로 시판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거리의천사들(대표:안기성)에 의해 서울형 사회적기업으로 인가를 받아 지난 7월5일부터 시판됐다.
 
빅이슈코리아는 노숙자에게 잡지 10권을 무료로 나눠준 후 그 잡지를 팔게 해 그 돈으로 다시 잡지를 1천4백원에 구입, 1천6백원의 이윤을 남기고 3천원에 팔아 자립기금을 만들 수 있는 순환구조를 통해 노숙자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현재 빅이슈코리아는 일하기를 희망하는 노숙인에게는 누구에게나 판매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정식 판매사원은 22명이며 최근 빅이슈를 팔고 싶다며 전국에서 찾아오는 노숙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정식 판매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15일간의 임시사원 기간을 거쳐야 하고, 정식 판매사원이 되면 고시원에서 한달간 무료로 묵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또한, 6개월 이상, 1백만원 이상의 저축 금액이 있는 이에게는 거리의천사들 매일임대주택지원사업을 통해 자기 이름으로 된 주거지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빅이슈 문화사업국에서는 판매사원들에게 동기부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취미생활과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판매 사원 7명과 직원 3명은 오는 19일~26일까지 브라질에서 열리는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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