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기다리는 아이들

[ NGO칼럼 ] 엔지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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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06일(월) 19:10
김미라 / 한국 컴패션 경영지원실장

한국컴패션의 크리스마스는 좀 빨리 시작된다. 후원자들의 편지가 번역과정을 거쳐 미국 본부를 통해 26개 수혜국으로 보내지기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맘때부터는 이른바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캠페인을 시작해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컴패션 어린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다. 어린이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날이며, 각자의 생일과 더불어 일년 중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해서 우리로 치면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나 다름 없다.

많은 후원자들이 이를 위해서 후원금과 별도로 선물금을 보내주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문화권이 아닌 한국의 모금액이 가장 저조하다.

크리스마스 선물금 모금 말고도 한국컴패션이 다른 컴패션 후원국들에 비해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편지 쓰기'이다. 컴패션에서는 보다 쉽게 후원자가 어린이에게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컴퓨터로 이메일 쓰듯이 작성만 하면 되는 방법도 온라인 상에 마련해 놓았고, 어린이가 가장 목 빠지게 편지를 기다리는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같은 때에는 예시 문장까지 제공해서 따라 쓰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후원자들의 보내는 편지는 어린이가 보내오는 편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후원자를 둔 어린이가 전세계에 총 8만여 명인데 결연 이후 한번도 편지를 받아보지 못한 어린이 수가 약 3만3천여 명에 달한다.

어린이센터의 다른 친구들이 해외 후원자로부터 사진이 든 편지를 받아볼 때 부러운 시선으로 그저 바라보아만 하는 어린이의 심정은 어떨까? 답장은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열심히 소식을 전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단 한장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할 때의 그 기다림은 또 얼마나 애가 닳을까?

바쁜 일상에 시간을 내 편지를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후원자의 편지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컴패션 현지에 가서 가정방문을 할 때면 어린이들은 "너희 후원자는 어떤 분이니"라는 질문에 하나같이 고이 간직했던 편지를 자랑하듯 꺼내 보인다. 컴패션 어린이들에게 편지는 즉 유형으로 느껴지는 후원자의 존재감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혜국 체신사정이 분실사고도 잦고 열악해서 컴패션에서는 상당량의 편지를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고 있다. 섬에 사는 어린이에게는 하루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배를 타고 들어가서 전해주기도 하고 오지에 사는 어린이에게는 차를 타고 8, 9시간을 달려가 편지를 안겨준다.

후원자의 편지 속 단 한 문장은 어린이들의 삶을 바꾼다. 부모를 잃고 고모랑 사는 케냐의 안젤라는 처음 보는 '사랑한다'는 글자를 읽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방글라데시의 쓰레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샤하다트는 '넌 소중한 아이야'라는 글에 경찰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글은 말보다 강하다. 때로, 편지에 적힌 메시지는 직접적인 만남 통한 충고보다도 강력하다.

지난 1월 아이티 지진 직후에 가수 션씨는 후원하던 어린이 중에 '신티치'라는 여자아이의 집이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그녀의 생사를 물어왔다. 당시 션씨가 더욱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신티치가 그 무렵 보낸 편지에 "다음 생일에 후원자님의 사진을 보내주세요. 어떻게 생긴 분인지 궁금해요"라는 부탁이 있었던 것. 션씨는 답장도 못한 그 편지가 마지막일까 전전긍긍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야 신티치가 무사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션씨는 미안한 마음에 직접 아이티로 날아가 신티치에게 사진 대신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돌아왔다.

어린이들은 편지를 기다린다. 자신과 지구 반대편의 후원자를 복된 인연으로 묶어주신 하나님께 함께 감사 드리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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