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쓰러졌다 은혜로 일어난다"

[ 마이너리티 리포트 ] 교회와 함께 뛰고 있는 기독교 기관 사람들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0년 08월 24일(화) 17:51
   
▲ 여러 기독교 기관 직원들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 사역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교회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요청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 재상 '곽외'는 왕이 인재 등용책을 묻자 '선시어외'(先始於외)라고 말한다. 그는 좋은 대우로 인재 모을 궁리를 하던 왕에게 '먼저 가까이 있는 신하(자신)부터 파격적으로 대우하면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인재가 모일 것이며, 이는 직접적인 홍보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왕은 곽외에게 궁궐과 같은 집을 하사했고 이 소문을 들은 많은 인재들이 연나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직원들의 대우에 관한 소문은 인재를 모으고 조직을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교계 기관들의 직원 대우는 어떻게 소문이 났을까.
 
일단 동종의 사회 직장보다 보수가 적고 복지후생도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지난 2003년 본보에는 기독교 기관의 근무 환경에 대한 기획 기사가 실렸다. 당시에는 본교단 총회에서 15년차 된 직원의 연봉이 2천7백만원 정도로 보도됐다. 지금은 어떨까?
 
본보 조사 결과 7년 전보다는 약 4~5백 만원 이상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수치는 올해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진 5천여 건의 이력서를 분석해 발표한 15년차 대졸자 평균연봉, 4천9백49만원과는 큰 격차가 있다.
 
기독교 연합기관이나 선교단체, 봉사기관 등은 더 열악하다.
 
상당수 기관의 신입사원 초봉이 월 1백만원 미만이며, 10년 이상 근무해도 2천만원 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기자가 만난 한 기관의 간사는 "급여가 적지만 매달 지급되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고 전했다. 주변에는 기관 사정으로 적은 급여조차 매달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급여가 지나치게 적은 직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먼저 이직률이 높다. 지나치게 임금이 적은 직장은 근로자에게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명확한 규정이나 규제 없이 특정인의 독단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기관의 경우 일부 직원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인맥을 통한 낙하산 인사와 모금을 위한 전시성 사업 치중도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한 기관도 노동자를 가볍게 여기기가 쉬워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과중한 업무 부과와 1인 다역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이와함께 직원들의 성장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직원들은 오직 주어진 일만 수행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교육을 통해 역량을 키우고 인재로 성장시키기보다는 일에 맞으면 사용하다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지쳐보이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버리면 그만이다.
 
이러한 사례는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며, 다수의 기독교 기관에서 봉사하는 리더와 직원들은 선교 사명을 가지고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시간제 봉사자 중 상당는 보수를 받지 않는 순수한 헌신자로 사역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들의 업무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얼마전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을 시작한 한 청년은 "들어오자마자 큰 사업들이 잡혀 있어 분주하지만 모든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협력하고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행사준비로 사무실에서 잠을 청해도 직원들이 함께 식탁에 둘러 앉는 시간이 즐겁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의 열악함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오래된 선배들이 먼저 솔선해서 일하고 있어 힘든 것을 느끼기 힘들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기관을 명시하기는 어렵지만 총회 산하에도 타 부서나 기관에 비해 대우와 복지가 열악한 곳들이 있다. 상근직원이지만 일용직 대우를 받기도 하며 심지어는 소규모 사업장에까지 일반화돼 있는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관도 있다. 본부선교사와 같은 석좌제 직원은 총회로부터 받는 각종 혜택으로부터 열외돼 있기도 하다.
 
이들이 받고 있는 더 큰 스트레스는 처우 개선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말하기도 어렵고 이를 공론화시키려는 사람도 없다. 사회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생활 수준이나 주거 환경 등이 비교될 땐 상실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근로자에게 있어 회사는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이를 적절히 분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일터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기관의 수장으로서 관심분야에 노동력을 투입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기관이나 기업의 대표가 힘든 것은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기독교 기관들이 후원금에만 의존하는 운영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 가치 창출은 노동의 결과보다는 인맥과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일이 많다. 또한 교회들이 얼마만큼의 관심을 기울이고 후원에 동참하는가가 조직을 성장시키고 개선해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제95회 총회가 몇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총회주일헌금 역시 제94회 총회에서 정한 20억원이라는 목표에 턱없이 모자란다. 참여한 교회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총회 창립 1백주년 사업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 준비를 비롯해 국내선교부, 세계선교부, 교육자원부, 사회봉사부, 군농어촌선교부의 사업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교회들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함께 기독교 기관들도 변화도 필요하다. 본교단 총회를 비롯해 많은 기독교 기관들은 여러가지 대형 사업과 원대한 비전을 위해 막대한 재력을 쏟아붇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노력이 교계와 사회에 좋은 소문으로 전파돼 큰 선교적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효과적으로 좋은 소문을 내는 방법은 가장 가까운 이들부터 잘 대우하는 것'이라는 '선시어외'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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