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 연재 ] 사도바울행전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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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18일(수) 15:43
   
▲ 십자가형(피카소,1930년).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서 기도와 명상으로 지내던 시기의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모름지기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었던 때처럼 유대인의 비난에 반론하고 항변하며 성난 말투로 토론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유대인의 비난에 침묵하고, 비난과 욕설을 말없이 들으며,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 '자아'를 죽이는 데 힘썼을 것이다. 훗날 바울은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십사 년 전"은 바울이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 머물던 때인 주후 53년 가을에서 55년 사이를 가리키며, 바울이 다소에 있던 시기에 해당된다. 바울은 다소에 있던 시기에 명상하는 가운데 주의 환상과 계시를 보며, '십자가의 도'에 관한 신학을 완성했던 듯하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1~4).

바울이 다소에 머물던 이 시기는 주위의 반대와 비난의 소리에 귀를 막고, 오로지 하나님 안에 깊이 자아를 잠기게 하고,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히 큰 여러 계시"(고후 12:6)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십자가의 도'인 바울 신학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본 사실을 자랑하였다. 왜? "그가 낙원에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본 영의 사람인 자기는 자랑하였으나, 육의 사람인 자기에 관하여는,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주의 환상과 계시가 지적이고 이론적인 신학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여 말하였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

바울이 다소에서 주의 환상과 계시를 보고 서신을 통하여 '십자가의 도'를 전한 지 1천200년 후, 스콜라 학파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식'으로 조직신학서 '신학대전'을 집필하였다.

문항 수 8백, 책의 부피는 독일어 판으로 49책에 이르는 '신학대전'은 철학의 인식론 및 존재론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논리로 하나님과 도덕 그리고 영혼에 관하여 해설하고 있다.

심지어 신의 존재 증명까지도 지식으로 해명하려 하였다. 제1의 증명은 사물의 운동, 제2의 증명은 작용인(作用因)의 근거, 제3의 증명은 가능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근거, 제4의 증명은 여러 사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완전성의 관계, 제5의 모든 것이 지니고 있는 목적의 근거라는 식이다.

'신학대전'은 오늘날에도 가톨릭 신학의 기본이며 교리이다. 그러나 저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제3권 전 12책 중 7책까지 쓰고 나서 갑자기 집필을 중단하였다. 제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보니, 내가 쓰는 것이 너무 초라한 내용이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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