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전하는 생명사랑

[ 아름다운세상 ] 의료봉사로 구슬땅 흘리는 '동의난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0년 08월 11일(수) 09:49
   
▲ 동의난달을 설립하고 매해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는 신재용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여름 장마도 지나가 그야말로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30일.
 
'춘향'의 고장 남원 아영중학교 입구는 까까머리의 중학생들 대신 몸이 불편한 촌로(村老)들의 등교로 부산했다.
 
학교로 향하는 노인들은 서울 및 수도권에서 내려온 한의사 선생님들에게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세라 진료 시작 시간인 오전 7시 전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월에 닳고 망가져 불편하고 아픈 몸으로도 생업을 쉴 수 없었던 노인들은 "아이고, 삭신이야"라는 탄식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이곳을 찾은 것이다.
 
이날 의료봉사를 펼친 이들은 한의사와 일반인들로 구성된 단체 '동의난달(명예이사장:신재용, 이사장: 이광연)'의 회원들. 지난 7월30일부터 8월 1일까지 하계의료봉사를 펼친 88명의 자원봉사자들은 3일동안 8백여 명의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의난달'은 신재용 한의사를 중심으로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모여 '한의학의 전통계승', '진리의 추구', '사랑의 실천' 등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1992년 8월 1일 발족, 2004년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은 순수 봉사단체다. '동의'는 한의학, '난달'은 '한 곳에서 여러 곳으로 퍼져나가는 기준점'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동의난달'은 매년 의료시설 취약지역 한방 의료봉사, 노인복지사업, 지방 어린이 서울 초청, 장애인 사업, 한의학 강의 및 문고 발행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중 의료시설 취약지역 의료봉사는 이번이 벌써 1백82번째. 치료를 위해 아영중학교에는 진료실, 추나실, 초음파실, 수액실 등으로 간이 병원이 꾸며지고 각 방에는 사혈침, 부항기, 알코올 솜, 호침, 장침, 핫백, 약재 등 의료도구들이 채워졌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명예이사장 신재용한의사의 안내로 진료실을 들어서자 몸에 수많은 침을 꼽은 노인들이 열을 맞춰 누워있었다.
 
"더위를 피해 오전에는 환자들이 더 많이 모였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한가한 시간입니다. 이 지역의 의료시설이 많지 않고 더군다나 한방병원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영면 지역의 몸이 불편한 분들은 거의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 접수를 받고 있는 동의난달 자원봉사자들.

 
수많은 환자들 중에는 무리한 노동과 노쇠화 현상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이른바 근육통 관절염 등 침과 뜸, 찜질이 필요한 병들이다.
 
오후 진료가 시작되어 환자들이 몰려들자 신재용 한의사의 진료가 시작됐다. 신 한의사가 환자 한명을 진료하기 시작하자 자원봉사를 나온 한의대 학생들이 우르르 모여든다.
 
자타가 공인하는 명의(名醫) 신재용 선생의 진료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맥을 짚고, 이곳 저곳을 눌러보며 환자의 증상을 묻는 대선배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칠세라 옆에 바짝 달라붙어 진료 모습을 관찰한다. 신 한의사는 학생들에게 직접 진료 시범을 보이며 증상에 대한 지식, 진료 방법 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선배 명의의 말과 행동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한의학계에서도 명의로 소문난 분의 진료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라는 것이 이곳에 모인 학생들의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진료를 마친 신재용 한의사는 자신의 신앙과 동의난달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가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0년. 우연히 방문한 남원 뱀사골의 한 초등학교의 열악한 시설을 보고는 어린이 신문을 보내주고, 어린이들을 서울로 불러 수학여행을 시켜주며 무료진료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돈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지요. 친구들과 함께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 아무 걱정하지 말자'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지요."
 
신 한의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었다. 신 한의사는 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라는 성경구절에 힘입어 사역을 전개해나갔다고 말한다. 이 성경구절은 동의난달이 사단법인화되기 전까지는 매년 봉사장소에 크게 써붙여 놓았을 정도로 봉사자들이 의지했던 구절이라고 한다. 동의난달은 현재 사단법인화 되어 특정 종교의 색채를 띠지 않고 비신자들이 기독교 신자들에 비해 더 많아졌지만 그래도 이들의 활동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느껴지는 이유다.
 
신 한의사는"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펼치신 3대 사역 중 하나인 병고침의 사역을 조금이나마 감당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무료의료봉사와 노인복지, 어린이 사역 등은 절대 쉬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 취재 후기
   
▲ 무료진료가 진행된 아영중학교 교문 모습.

 
알랙상드로 뒤마의 유명한 소설 '삼총사'의 유명한 구절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All for one,and one for all)'를 기억하는가? 신재용 한의사는 어린 시절 형이 사준 총천연색 그림동화 '삼총사'를 수십번 읽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삼총사들의 외침이 뇌리 깊숙히 박혀 자신의 삶을 은연 중에 변화시킨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동의난달'의 슬로건도 '하나가 모두에게, 모두가 하나에게'다. 신 한의사는 매일 같이 "하나가 모두에게 마음을 주면 모두가 힘을 얻고, 모두가 하나에게 마음을 주면 하나는 존귀하게 된다"며 회원들을 격려한다.
 
하나의 힘을 알기에 그는 80년대부터 어린이 수학여행을 진행하고, 봉사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 창의교실'을 매년 열고 있으며 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 왜냐하면 봉사혜택을 받는 어린이 중 한 명에게라도 마음 속에 무엇인가 싹이 튼다면 그 한 아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취재 막바지에 기자는 놀라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봉사활동 바로 며칠 전 신 한의사가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신 한의사는 선발대로 와 현장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한의사는 "눈을 뜨고 수술을 받으니 두려움이 엄습하더라구요. 이 나이에 두려움을 갖는 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삶에 대한 애착이 많다는 것이고, 내 신앙이 아직도 가짜라는거죠"라며 겸손해 했다.
 
"주님을 만나서 내 인생이 꽃을 피웠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만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할텐데…. 정말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라고 고백하는 노(老) 명의의 말을 들으며 휴가기간 취재가 잡혔다며 투덜거리던 기자의 입술이 왠지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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