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과 성실로 만든 삶의 나이테

[ 나의삶나의신앙 ] 나의삶나의신앙-차봉오장로 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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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29일(목) 09:54

해방교회 원로ㆍ차 한의원 원장

지금 돌아보니 나는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하고 성실히 했던 것 같다. 34살 때 장로로 장립된 이후 지금까지 교회를 열심히 섬겼고 그러던 중 노회를 섬길 기회가 생겼고 노회장도 지냈다. 또한 교계를 위해 봉사하다보니 어느날 기독공보 사장도 맡겨 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했다.

   
▲ 주님 안에서 성실히 살아온 삶이 이슬비 내리듯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나는 뭔가 욕심을 내서 쟁취하기보다는 눈앞에 놓여있는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는 성격이다. 교회 일 뿐 아니라 대한한의사협회회장을 맡아 전국의 한의사들과 한의학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기억도 늘 새롭다. 당시 나는 한의사군의관 제도와 의료보험혜택을 한의원으로까지 확대하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것 또한 성실한 삶을 살겠다는 나의 소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교회학교 경험도 없는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교회 원로목사님이셨던 박치순목사님(증경총회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셨던 분이셨다. 물론 나의 아내 선우영자장로의 사랑과 지지는 늘 나에게 큰 격려가 됐다.

선우장로의 삶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것 같다. 1남 3녀인 자식들 모두 배우자와 협력하면서 아름다운 가정의 본을 보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 특별한 신앙교육관이 있었느냐는 등 교육에 왕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질문을 한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말할 답을 찾지 못한다. 없다는 게 답이니 굳이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한때는 설명을 해주려고 곰곰히 궁리를 한적도 있지만 특별히 자녀들에게 강조한 것도 강요한 것도 지시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생각은 늘 시도에서 마침표를 찍고 만다. 다만 난 나의 삶을 성실히 살았을 뿐이고 그것이 이슬비 내리듯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이것이 교육관이라면 교육관인 셈이다.

내가 스스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난 교회 앞에, 가족 앞에, 특히 자녀들 앞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고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왔다. 그 삶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내가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자랑거리다.

첫째인 성희는 현재 미국 피츠버그에 거주하고 있고 남편은 박인범목사로 나의 신앙을 세워준 박치순목사님의 자제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박인범목사는 목사이면서 의사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 영혼을 모두 치료하는 귀한 사람이다. 딸도 이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현재는 남편과 함께 목회하면서 교인들을 섬기느라 쉴틈이 없다. 늘 애쓰는 딸을 볼때마다 마음이 애틋하나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일이기에 격려해 주고 있다.

선우영자장로가 은퇴하면서 해방교회 장로가 된 둘째 차성은장로도 의사로 차 한의원 2층에 개원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좋은 믿음의 가정으로 나와 아내를 이어 해방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다. 셋째 성혜도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고 사위 주봉익장로는 시애틀참사랑교회를 섬기며 주 내과병원을 개원해 인술을 펼치고 있다. 막내 성순은 서울에 살고 있다. 사위 최덕환집사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가정을 든든히 세워가고 있다.

조금도 특별할 것이 없는 나의 삶의 이야기들. 들추어 놓고 보니 어느 한순간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사랑에 지금 이 순간도, 더 나아가 내가 눈을 감을 그 언젠가까지도 감사드린다.


정리/장창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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