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기다림

[ 입시사교육바로세웁시다 ]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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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28일(수) 11:33

일간 신문에 서울의 한 외국어 고등학교의 유학반 졸업생들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졸업 후에 미국 명문대학교에 입학한 이들 중 다섯 명만 미국에서 취업을 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비리그까지는 잘 갔다" 이것이 그 기사의 소제목이었다. 아마도 그 부모들은 자녀들이 특목고에 들어갔으며, 나아가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속한 명문대에 입학했으니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보다 멀리 내다볼 것을 요구한다. 명문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교육의 성공이 아니다. 교육은 평생을 어떤 삶을 사느냐와 관련이 있다. 어느 학교에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둘러서 '성공신화'를 이야기 한다. 소위 '최연소 입학'이라는 칭호를 붙이며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내용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게 되는가? 어느 고등학교, 어느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마치 교육의 성공인 것처럼 여기고, 또 이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 아닌가?

교육은 기다림의 행위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표현하는 것도 교육의 이러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렸으면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교육은 기다림을 요청한다. 조급함은 교육을 그르치게 하는 첩경이다. 만약 싹이 이제 막 나왔는데 자라기를 기다리지 못한 채 싹을 손으로 잡아당긴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오늘날 부모들은 너무나 조급하다. 소위 '조기 유학'이라든지 '조기 영어교육' 등과 같은 문제가 이러한 조급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녀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태교논술'을 하는 부모마저 생겨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창문을 알파벳으로 도배를 한다. 동네마다 생겨나는 영어 아기학교들과 유치원들은 기다리지 못하는 부모들로 인해서 만원사례를 하고 있다. '선행학습'은 또 다른 조급함의 결과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 채 자녀를 학원에 보내어 선행학습을 받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글을 다 배우고, 학교에서 교과 진도가 나가기 전에 이미 학원에서 교과목을 다 배워 버린다. 이런 선행학습은 자녀들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핀란드 교육이 우리나라 교육과 다른 중요한 차이 중의 하나가 바로 선행학습이 없다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급함과 불안함은 불신앙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녀교육에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교육에도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원리대로 교육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교회 다니는 부모마저 특목고나 명문대학을 가지 못하면 자녀교육의 실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자녀교육은 '이미' 늦었고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라는 단어 대신에 사용하시는 단어가 있다. 바로 '때가 차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주신다. 진정한 자녀교육의 성공은 멀리 보고 기다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성취되는 것이다. 

박상진교수 /장신대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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