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한석, 피터 언더우드입니다."

[ 인터뷰 ]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07월 27일(화) 11:30
   
▲ 장로교 최초 선교사 언더우드의 4대손인 피터 언더우드(원한석).
"준비한거 하나도 없는데요…, 저는 원한석, 피터 언더우드라고 합니다."

지난 22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총회 양화진문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위원장:김정서) 보고회가 마쳐갈즈음, 발언을 요청받은 피터 언더우드가 단상에 섰다. 자신을 소개하며 그는 장로교 최초 선교사 언더우드의 4대손이라는 표현을 잊지 않았다. 평소 선교사의 후손으로 이땅에 살아가고 있는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을터.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너무 젊을때 돌아갔던 와이프까지 7명이 지금 양화진에 묻혀 있어요." 소개를 마친 그가 전한 첫 마디다. 세련된 미사여구 하나 없는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그는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선교사의 후손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분명히 말했다.

이어서 그는 "미국에 있는 다른 선교사 후손들이 양화진 문제의 해결을 내 의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오랫동안 묘지를 관리했던 경성구미인묘지회 회장의 책임을 맡고 있다"며 "양화진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빨리 해결되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게 됐으면 한다"고 했다.

선교사 후손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양화진 문제의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피터 언더우드는 "희망사항은 간단하다"며 "1985년에 이뤄졌던 마음, 정신으로 돌아가 대표성 있는 재단에서 양화진을 관리할 것과 유니온교회가 다시 선교기념관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화진 선교기념관은 한국교회 신자가 기부해서 서울유니온교회의 영구적인 예배 장소를 위해 지어진 것"이라는 그의 말이 '선교기념관'이 갖는 역사성의 무게를 가늠케했다. 그 '역사성'에 대해 캐묻는 기자에게 그는 말했다. "선교기념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교회가 어떻게 그곳을 사용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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