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 선교와 전도

[ 최근신학동향 ] 최근 신학 동향  7. 에큐메니칼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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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21일(수) 09:31
에큐메니칼 신학의 세 번째 영역은 '선교와 전도' 분야다. 에큐메니칼 운동 자체가 선교 현장에서 연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시작되었기 때문에, 에큐메니칼 운동이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을 발전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이 우선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통전적 선교' 개념이다. 통전적 선교라는 것은 선교의 범위에 대한 문제다. 전통적으로 복음주의 교회는 선교를 복음 전도와 동일시했다. 구체적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운동은 1928년 예루살렘 제1차 국제선교협의회(IMC)에서부터 통전적 선교 개념을 주장했다. 선교는 복음전도뿐만 아니라 사회참여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선교도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의 차원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모든 차원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았다.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이 두 번째로 발전시킨 것은 '하나님의 선교' 신학이다. 이것은 선교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신학이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선교의 주체를 선교회 또는 선교 단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근대 선교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캐리(1761-1834)는 침례교 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인도 선교를 시작했다.

1938년 탐바람 대회는 선교의 주체를 교회라고 인정했다. 선교 단체가 아니라 모든 교회가 선교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1952년 빌링겐 국제선교협의회는 드디어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파송하셨듯이, 하나님이 교회를 세상에 파송하시고,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이 발전시킨 또 하나 중요한 주제는 '선교와 일치'의 문제다. 교회가 분열된 상태로는 선교할 수 없기 때문에, 교회가 일치하여 공동으로 증거하고 선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선교 운동은 초기에는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경쟁적으로 선교하는 것을 그만두고 서로 연합하여 선교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기에는 서구 교회와 신생 교회의 협력을 추구했다. 그리고 후기에는 선교하는 교회와 현지 교회의 조화로운 협력 관계를 강조했다. 선교와 일치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선교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다.

역사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주의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주의 선교 운동에서 기원했다. 20세기 전반에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가 함께 공존하며 발전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 복음주의자들이 별도의 세계 대회로 모이면서 두 운동은 서로 대립했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후 두 운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66년 베를린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복음전도보다 사회참여를 강조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런데 1974년 로잔대회에서 존 스토트 목사는 처음으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모두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선언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신학의 통전적 선교 개념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로잔대회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명확하게 구분한 후 복음전도의 우위성을 분명하게 선언함으로써 복음주의의 강조점을 지켰다. 1975년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도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고 다시 복음전도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사회적 책임에 몰두하다가 그동안 소홀히 해 온 복음전도를 다시금 강조하게 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 두 운동 사이에 일치점과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통전적 선교 개념과 관련하여,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는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이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 우위성을 논하지 않는 반면에 복음주의는 복음전도의 우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운동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앞으로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가 서로 다른 차이점 속에서도 일치를 모색하는 보다 더 폭넓은 에큐메니칼 대화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송인설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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