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

[ 입시사교육바로세웁시다 ] <78>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7월 13일(화) 18:32

가까운 지인에게서 자신이 만난 두 부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은 딸이 둘이 있는데 둘 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가서 큰 딸은 교대를 나와서 지금 학교교사로 일하고 있고 둘째도 검정고시로 서울에 있는 유수한 대학에 들어갔다. 큰 딸은 어려서 다리를 다쳐서 눈에 띄는 흉터자국이 있었다. 부모가 보기에는 그리 심각한 흉터가 아닌데도 사춘기의 딸은 그것 때문에 학교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부모는 자기들의 뜻을 강요하지 않고 딸이 원하는 대로 학교에 가지 않도록 허용해주었다. 그 딸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남보다 일찍 대학에 들어갔고 무사히 졸업해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둘째는 학교에는 다녔지만 말썽을 많이 부리는 불량학생이 되었다. 아이의 장래를 염려한 부모는 딸이 일정기간 동안 불량학생들과 격리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딸을 데리고 6개월 정도 외국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 아이는 정신을 차리고 혼자 공부해서 역시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 본시험에도 합격해서 지금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아들과 딸이 있는데 둘 다 공부를 잘 해서 하나는 서울의 유수한 대학의 법대와 의대에 들어갔다. 법대에 간 것은 부모가 법관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고, 의대에 간 것은 역시 부모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둘 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학교, 좋은 학과에 들어갔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둘 다 부모에게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부모들은 다른 것을 하고 싶더라도 일단 그 학교를 졸업한 후에 하라고 했다. 워낙 부모의 의지가 강했기에 이들은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들에게서 정신적으로 이상한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기들이 원치 않는 공부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모양이다. 결국 지금은 둘 다 사회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자녀들에게 그런 문제를 발견한 아버지도 충격을 받아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 두 가지는 좀 극단적인 예다. 이런 예가 있다고 해서 검정고시를 본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검정고시가 정규학교 공부보다 더 낫다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강요하는 학교에 갔다고 해서 모든 자녀들이 다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의 예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모순을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으며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 부모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두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학교, 좋은 학과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객관적으로 좋은 학교, 좋은 학과로 여겨지는 학교, 학과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그런 학교에 들어가기를, 그런 학과를 전공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가장 좋은 학교, 좋은 학과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학교나 학과이다. 객관적으로 아무리 좋은 학교라고 해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좋은 학교, 좋은 학과가 아니다. 부모가 요구하는 좋은 학교나 좋은 학과는 당사자인 자녀들에게 좋지 않을 수가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두 번째 가정의 아이들이 첫 번째 가정의 아이들보다 훨씬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정반대이다. 첫 번째 가정의 아이들은 좋은 학교, 좋은 학과에 들어갔지만 두 번째 가정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셈이 되었다. 그들은 똑똑하고 실력도 있었지만 진짜 좋은 학교, 좋은 학과에 가지 못했다. 자기들이 가고 싶은 학교,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둘째는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좋은 학교에 보내거나 장래가 있어 보이는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면 자녀교육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둘째 가정이 첫째 가정보다 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들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검정고시를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누가 보아도 자녀교육에 실패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첫째 가정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을 강요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심각한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에 비해 둘째 부모는 자녀들을 위한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욕심을 아이들에게 강요해 했다.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는 부모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자녀교육에 실패하고 말았다. 부모는 자녀의 교육을 주관하려고 하지 말고 자녀의 기쁨을 위해서 도와야 한다. 

방선기목사/직장사역연구소 소장ㆍ기윤실 이사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