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내 얼굴입디다"

[ 예화사전 ] <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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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6일(화) 19:11

나는 겁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괴기 영화나 귀신 영화는 보지를 않습니다. 어릴 적 유행하던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고 밤마다 시달린 안 좋은 추억이 있기도 합니다. 귀신형상이나 해골바가지 등 혐오스러운 모습들은 싫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그런 영화들은 피합니다.

그런데 15년 전 병원에서 축농증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매우 심한 상태이기에 코 주위를 CT로 찍었습니다. 그리곤 진찰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담당 의사 방을 찾았다가 그 자리에서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의사가 보여주는 내 코 주위의 CT 사진, 그것은 분명 내가 그토록 께름칙하게 여기던, 어떨 때는 무섭다고 여기던 바로 그 해골이었습니다. 아니, 그토록 잘 생긴 내 얼굴은 어디 가고 거기엔 늘 괴기 영화에나 나오던 그 무서운 해골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께름칙해 하던 대상은 타자(他者)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였습니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했고, 가급적 만나지 않으려 했던 그 얼굴은 바로 나였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그런 얼굴, 해골이었습니다.

나쁜 것을 말할라치면, 좋지 않은 것, 추한 것을 이야기하려면 언제나 남의 것이 먼저였습니다. 나는 늘 주인공이요, 선한 사람이요, 아름다운 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내가 바로 그 추한 이였고, 내가 바로 그 못난 이였고, 내가 바로 그 무서운 형상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람들 앞에서는 늘 고운 체, 잘난 체, 멋있는 체, 점잖은 체, 체, 체, 체 하며 살지만, 실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는 웃기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실체를 아시고, 또 그렇게 보시기 때문이지요. 시편 기자가 말합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린 어떤 형상일까? 왜 있잖습니까, 자외선으로 보면 다르고, X선으로 보면 또 다르고, 색안경으로 보면 다른 거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깊은 것을 보시는 하나님, 그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정말 우스운 모습일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맙시다. 이런 우리를, 이토록 추한 모습을 갖고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이 미련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세련된 모습, 위장된 모습으로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보이는 그 추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답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사랑입니까?

나는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며 거기에 비친 내 얼굴이 아니라 그 15년 전에 보았던 해골스러운 모습을 봅니다. 그리곤 더 이상 해골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추한 얼굴들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게 내 모습이기 때문이죠. 그리곤 이런 추한 모습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께, 늘 감격해 합니다.

양 의 섭 / 목사 ㆍ 왕십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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