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과 솔로

[ 목양칼럼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7월 06일(화) 19:08

40여 년의 목회를 은혜 중에 마친 선배목사님께 고견을 부탁했더니 "사역은 가고 관계만 남는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평생 목회를 해보니 젊어서는 일을 잘해보려고 아등바등 다투고 싸웠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때 일들은 다 지나가버리고 싸우다가 깨트려진 관계만 남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제는 사역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좋은 말씀이라는 정도의 가벼운 느낌 밖에 없었는데 어느 덧 목회 연륜이 20여 년 쌓이다보니 그 교훈이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온다. 그때 그 고견을 사역의 좌우명으로 삼았더라면 목회에 쓸데없는 갈등과 낭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게 된다.

일본의 역사소설 '대망(大望)'에서는 16~17세기 일본 역사의 주인공들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루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급한 성격과 민첩한 머리회전으로 전국의 패권을 장악했지만 부하 장수의 모반으로 무너졌고,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말잡이로 역사에 등장해서 성실과 충성으로 2인자가 되었지만 두 번의 조선과의 전쟁에서 성과를 얻지 못해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마침내 그의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 후 이에야스는 '쇼군'이 되어 도쿠가와 바꾸후(德川幕府)를 만들고 2백60년 동안 실질적인 일본의 주인이 되었다. 그는 이런 유훈을 남겼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라. 부자유를 일상사로 생각하면 인생은 그리 부족한 것이 없다. 참고 견딤은 무사장구의 근원이요, 노여움은 적이라고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을 알고 지는 일을 모르면 해가 그 몸에 미치느니라."

목회의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소리를 듣게 된다. 어떤 때는 수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의견을 조정해서 일치된 의견을 끌어내려다가 낙심할 때도 있다. 그래서 절차를 생략하고 지름길로 가려는 유혹을 받기도 한다. 필자는 밀라노에서 유학생들과 9년을 함께 목회하면서 귀한 교훈을 배웠다. 교인들의 다수가 성악가들이었는데 솔리스트로 모인 찬양대가 합창음반을 만드는 과정은 남다른 경험이었다. 솔리스트는 자기 음색이 분명한 사람이지만 합창을 위해서는 자기 소리를 죽이고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헌신을 한다. 만약 솔리스트들이 각자의 음색을 내는 합창을 한다면 그 음악은 소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양보와 조화를 통해서 하모니를 이룰 때 천상의 멜로디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의 목회도 이래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유럽에는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현악사중주단이 많이 있다. 아마데우스 사중주단은 1947년 영국에서 창단되어 40년간 활동하다가 비올라연주자가 죽음으로 해산되었고, 부슈 사중주단은 1919년 독일에서 창단되어 33년간 활동하다가 제1바이올린 연주자의 죽음으로 해산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경화, 장한나, 장사라, 백건우 등 세계적인 솔리스트가 많은데 비해 실내악단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것은 앙상블(Ensemble)보다 솔로(Solo)를 좋아하는 경향 때문이 아닐까? 앙상블을 잘 하려면 같은 목적을 위한 동일한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21세기는 독주의 시대가 아니라 앙상블을 잘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다. '같은 간절함'을 품은 동역자들이 협력할 때 교회에 부흥이 임할 것으로 믿는다.

최창범 / 목사 ㆍ 꿈의숲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